[우리 산하] 낭만이 있는 논산 탑정호출렁다리를 가다
[우리 산하] 낭만이 있는 논산 탑정호출렁다리를 가다
  • 이승호 기자
  • 승인 2022.01.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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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인 관촉사은진미륵을 함께 볼 수 있다

 

길이 600m의 논산 탑정호출렁다리. 이승호 기자
길이 600m의 논산 탑정호출렁다리. 이승호 기자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코로나가 숙지지 않고 있지만 마냥 사무실에 있기에 답답하여 제법 쌀쌀한 날씨이지만 오랜기간 호흡을 함께한 답사팀과 논산으로 떠난다.
충남 논산은 기름지고 너른 논산평야와 딸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또한 논산훈련소가 있어 남자들은 추억과 회환의 장소이기도 한 지역이다.

탑정호출렁다리 주변은 산책 할 수 있는 수변데크와 계백장군유적지도 곁에 있다. 이승호 기자
탑정호출렁다리 주변은 산책 할 수 있는 수변데크와 계백장군유적지도 곁에 있다. 이승호 기자

 

○넓고 파아란 탑정호수에 세워진 탑정호출렁다리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논산 탑정호출렁다리를 찾았다. 탑정호는 충남에서 예당호에 이어 2번째로 큰 저수지이다. 예당호에도 약 400m의 출렁다리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그에 못지 않게 탑정호에도 길이 600m의 현수교 형태의 출렁다리가 개통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평일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다. 4개의 주차장이 있고 다리에서 가장 가까운 제4주차장에 주차 후 다리를 다녀오면 된다. 다리 건너편에는 전망이 좋은 분위기 있는 커피집도 있다. 주위에는 수변생태공원, 음악분수, 딸기향농촌테마공원, 힐링수변데크산책로 등이 잘 정비되어 있고 도보로도 가능한 거리에 계백 장군 무덤이 있는 곳에는 백제군사박물관도 있다.
논산저수지라고도 부르는 탑정호가 있는 논산은 금강과 논산천이 억겁의 세월 동안에 만들어 놓은 논산평야, 백제시대에는 황산벌이라 부르는 끝이 보이지 않은 드넓은 논에 물을 공급하기위에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이다. 예당호 유역면적은 37,360ha이며 탑정호는 21,880ha이다.

국보인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에서 보이는 논산평야. 이승호 기자
국보인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에서 보이는 논산평야. 이승호 기자

 

○논산 반야산 관촉사(灌燭寺)
관촉사(灌燭寺)는 은진면 관촉리 논산평야 가운데 높지 않은 반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968년(광종 19) 혜명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눈여겨 볼 문화재는 2018년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석조보살입상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국보 제323호로 승격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은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크기가 17.8m이다.  특징은 우선 크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불상예배의 경외심을 돋우어주는 신앙적인 효과가 크다. 이러한 위압감은 얼굴과 손이 신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조되어 있으며 여러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불 뒷편에 있는 삼성각에 오르면 거대한 관촉사미륵불과 광활한 논산평야, 미륵신앙일번지라 부르는 금제 금산사을 품고 있는 모악산이 보이는 풍경은 가히 천하 일품이다. 다른 한편 통쾌하고 장쾌하다.
입장료는 성인 2천원이며 주차료는 무료이다.

명재 고택에는 정감이 가고 운치있는 장독대가 눈길을 끈다. 이승호 기자
명재 고택에는 정감이 가고 운치있는 장독대가 눈길을 끈다. 이승호 기자

 

○아늑한 곳에 위치에 개방된 명재고택
명재고택은 논산평야의 서북쪽 계룡산 방향의 깊숙한 곳인 노성산성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명재는 윤증(尹拯, 1629-1714)의 호이다. 명재는 파평 윤씨며 성혼의 외증손이고 윤선거의 아들이다. 당시 당파 중 서인이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으로 갈라지면서 소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옥의 안채는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대문도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개방되어 있다. 뒤로는 산줄기를 병풍으로 두르고, 앞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두었다. 연못의 원형 섬에는 배롱나무가 심겨져 있다. 사랑채 동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많은 장독이 줄지어 있는 2곳의 장독대가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진다.

사계 김장생을 모신 돈암서원 사당. 이승호 기자
사계 김장생을 모신 돈암서원 사당. 이승호 기자

 

○예학의 거두 사계를 모신 돈암서원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9곳 중 충청도 유일의 서원인 돈암서원은 대전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1번 국도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다. 앞에는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이 둘러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즐비한 한옥이 보인다. 서원이 아니고 논산한옥마을이다. 예학관, 체험관1·2·3, 유물전시관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주차 후 왼쪽으로 약100m를 걸어서 들어가면 홍살문, 하마비와 입구 겸 외삼문인 산앙루(山仰樓), 강당인 응도당(보물 제1569호), 유생이 기거하는 동재(거경재), 서재(정의재), 사당인 숭례사(유경사)가 여느 서원과 다름 없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평지에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다.
사계의 문하생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그의 아들 김집 부자(父子)의 학문과 덕행을 적은 원정비(院庭碑)가 강당 앞에 있는 점과 사당을 둘러친 내삼문에 글귀를 적은 꽃담이 특이하다. '지부해함(地負海涵):대지가 만물(萬物)을 짊어지고 바다는 만천(萬川)을 포용한다.'는 글귀도 있다.
사당인 숭례사(崇禮祠)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4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위패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적은 나무패를 말한다. 종이로 만든 신주는 지방이라고 한다. 사당의 주향(主享)인 사계 감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본관은 광산, 시호는 문원공(文元公)이다.송일필에게 예약을 율곡에게 성리학을 배워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거두라고 한다.
사계 제자들의 일화를 소개해본다. '그 옛날 경상도 상주의 유학자 우복 정경세가 돈암서원의 사계를 찾아와서, '선생의 문하에서 사윗감을 찾고자 합니다.' 라고 고하자 사계 선생이 '마침 세 사람이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대로 선택하시지요'라고 허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복 선생이 서원 마당에 들어가 인기척을 하자 마자 첫 번째 선비가 마당까지 내려와 정중히 인사하고 방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두명의 선비가 있었는데, 한 선비는 방문객을 한번 처다보고 읽던 글을 계속 읽었고, 또 다른 선비는 의관도 갖추지 않고 아랫목에 옆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눈이 화등잔만 했다. 그런데 손님이 들어와도 일어나지도 않은 채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복 선생은 세 명의 젊은 선비를 비교했다. 첫 번째 선비는 예의가 바르고 나무랄 데 없으나 선비의 몸가짐으로는 약간 가벼운 듯하고, 두 번째는 인물도 준수하고 성품도 바르며, 쉽게 움직이지 않은 선비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마지막 선비는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범상치 않아 크게 될 사람 같으나 너무 강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켜 딸이 고생 할 것 같아서, 두 번째 선비를 사위를 맺었는데 그가 바로 동춘당 송준길이었고 그리고 처음 마당까지 내려온 사람이 초려 이유태이고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한 선비가 우암 송시열이었다고 한다.'

충남에서 두번째로 넓은 탑정호 전경. 아승호 기자
충남에서 두번째로 넓은 탑정호 전경. 이승호 기자

 

탑정호출렁다리, 명재고택, 관촉사, 돈암서원을 답사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쇠솥이 있는 개태사를 잠시 들른 후 더 가고 싶은 곳도 있었으나 짧은 낮시간이라 아쉽지만 마무리한다. 여행은 어디로 가는 가도 중요하고 무엇을 먹는 것도 관심사이지만 누구와 함께 가는 가느냐에 따라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할 수 있음 새삼 느꼈다. 하루 일정으로는 빡빡했지만 기분이 좋고 마음 뿌듯한  답사여행이었다.

tip:
•돌체회관(041 732-3422) 관촉사 입구에 있다. 정갈한 반천에 담백한 맛이 좋다. 불고기정식 1인분 1만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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