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김충선 장군을 모신 녹동서원을 가다
[우리 산하] 김충선 장군을 모신 녹동서원을 가다
  • 이승호 기자
  • 승인 2021.11.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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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우호관이 녹동서원과 함께 한다

[우리 산하] 김충선 장군을 모신 녹동서원을 가다

시종 진지하고 열정적인 경주향교 고택답사 팀이 녹동서원에서 기념촬영. 이승호 기자
시종 진지하고 열정적인 경주향교 고택답사 팀이 녹동서원에서 기념촬영. 이승호 기자

 

대구시내가 온통 노오란 은행잎으로 물들었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단풍이 절정인 늦 가을에 경주향교 고택답사 팀을 따라 녹동서원을 갔다. 녹동서원은 대구에서 가창을 지나 청도방면으로 가다가 팔조령 일보 전에 우측 남지장사 방면으로 들어가면 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에 있다. 2012년에 건립한 한일우호관과 함께 있다.

산 깊고 외진곳에 위치한 우록마을에 있는 한일우호관이 있다.이승호 기자
산 깊고 외진곳에 위치한 우록마을에 있는 한일우호관이 있다.이승호 기자

 

○우미산 우록마을
400여 년 전 이곳은 깊고 외진 산골이었을 우륵리는 지금도 대구도심에서 동남쪽으로 25km 거리에 있다. 신천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미산 아래 골짜기에 있다. 마을 주위는 우미산, 최정상, 삼성산, 삼정산, 자양산이 병풍처럼 둘려처저 있어 풍수적으로 높고 낮음이 거의 없는 무곡성 형국이라고 하며 큰 인물이 태어날 명당이라고 한다. 마을 주위 지형이 소의 굴레 모양이라 우륵(牛勒)리라 불렸으나 김충선 장군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슴과 벗하며 지냈다고 우록(牛鹿)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노오란 은행나무가 반겨주는 김충선 장군을 모신 단아한 녹동서원. 이승호 기자
노오란 은행나무가 반겨주는 김충선 장군을 모신 단아한 녹동서원. 이승호 기자

 

○녹동서원(鹿洞書院)
우리나라 서원은 대부분 문인 즉 성리학자를 모시고 있으나 녹동서원은 신숭겸의 표충서원, 김유신의 서악서원과 함께 장군 즉 무인을 모신 많지 않은 서원 중 한곳이다. 녹동서원은 충절보국의 삶을 산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의 위패를 봉안하고 봄과 가을에 제향하는 서원이다. 정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향양문(向陽門)이며

고향을 그리워 하는 시(詩)
-남풍유감-
남풍이 때때로 불 제
고향을 생각하니
조상의 무덤은 평안한가
일곱 형제는 무사한가
구름을 보며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과
봄풀을 보고
솟아오르는 생각이
어느 때인들 없을쏘냐
아마도 세상에 흉한 팔자는
나뿐인가 하노라.
<모하당 문집 中에서>

사당은 녹동사(鹿洞祠)이다. 동재와 서재는 보이지 않고 노오란 잎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모하당 김충선 장군
모하당 김충선은 사성(賜姓) 김해 김씨 시조이며 같은 본관으로는 전 법무부 장관 김치열이 있다. 일본 명은 사야가(沙也可),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일본군 장수로서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출병시켰을 때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이 되어 바다를 건너왔다. 그때 나이 22세였다. 부산에 상륙한 그는 곧바로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지하는 군령을 내고 1592년 4월 15일 조선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음을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적어 길거리에 붙였다. 효유서를 붙인 지 5일이 지난 4월 20일 사야가는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강화서를 보내 투항, 귀순했다. 이런 경우는 항왜(降倭)라 한다. 반대인 경우는 순왜(順倭)라 한다. 이후 임진왜란에 큰 전적을 거두었으며 조총 만드는 기술도 전수해 주었다. 임란 후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에 큰 업적을 거두어 삼란공신이라 부르며 정2품의 정헌대부에 봉해진 충신이며 무덤은 한일우호관 뒷편 300m 거리의 산에 있다.

대구시내는 온통 노오란 은행잎으로 뒤덥혔다. 녹동서원 앞에도. 이승호 기자
대구시내는 온통 노오란 은행잎으로 뒤덥혔다. 녹동서원 앞에도. 이승호 기자

 

○녹동서원 신도비(神道碑)
죽은 사람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우는 신도비는 정2품 이상 관직으로 뚜렷한 업적과 학문이 뛰어난 경우에 세웠다. 이 비는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 5월 녹동서원 앞에 건립되었다. 신도비에는 '그는 문과 예를 공경했고, 그것과 여생을 같이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불의 앞에서는 그토록 경멸하던 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 이괄의 난에 나가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는 늙은 몸을 이끌고 나가 적과 맞섰다.'고 큰 신도비에 적혀 있다.

우록리에 있는 가창 한일우호관 전경. 이승호 기자
우록리에 있는 가창 한일우호관 전경. 이승호 기자

 

○달성 한일우호관
입구에서 '마네 키네코(복 고양이)'가 환영하는 한일우호관은 김충선 장군의 ‘박애사상’을 기리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2012년 5월에 녹동서원 옆에 개관하였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으며, 학생들과 일반관광객이 인기가 있다. 전시관에는 3D상영관, 다도실, 한일 양국 전통놀이 시현장, 일본 와카야마현 자료실, 국궁 체험장이 있다. 유물로는 1798년에 간행된 3권 1책의 모하당 문집 목판본이 있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다.

tip:
•주위에 가 볼만한곳:
남지장사,청련암, 백련암 한천서원,
포레스트 스파벨리가 있다.
•가창 우록리 먹거리:
최정산 가는 길 우측에는 운치있는 주리마을에는 분위기 좋은 커피집도 있는 주리먹거리 타운이 있다.
•가창 우록리 '감나무집'
053 761-6666
유황오리한방백숙 大 5만5천원, 촌닭능이한방백숙 中 5만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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