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달성 예연서원(禮淵書院)에서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하다
[우리 산하] 달성 예연서원(禮淵書院)에서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하다
  • 이승호 기자
  • 승인 2021.05.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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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의원들과 곽재우 장군 유적지를 탐방하다

 

곽재우 장군을 모신 예연서원에서 참배 후 기념 촬영.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곽재우 장군을 모신 예연서원에서 참배 후 기념 촬영.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싱그런 실록으로 가득한 사월 어느 봄날, 곽재우 장군이 태어난 고장인 경남 의령군의회 의원들과 직원들 15명이 대구 달성군에 있는 예연서원과 곽재우 장군 묘를 참배 겸 문화유적답사를 온다기에 현풍 곽씨 대구종친 곽하영 회장과 예연서원이 있는 구례마을 입구에서 오후 1시 30분에 그들을 맞이했다. 의원들은 대부분 외유형 관광을 다닌다고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재미 없고 다소 답답한 문화유적답사를 온다기에 의아했다. 다른 한편 우리고장의 문화유적지를 찾아주어 고맙기도 하다.  손님을 접대하는 입장에서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이라 예연서원과 망우당 묘역을 사전답사도 했다.

예연서원 입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예연서원 입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여기 오기 전에 망우정을 다녀왔다는 문봉도 의령군의회의장 일행과 함께 신도비, 예연서원을 둘려본 다음, 사당에 참배 후  장판각, 망우당 묘역 답사를  즐겁고 유익하게 마무리 했다. 대구이지만 대구가 아닌 먼길을 두 번이나 갔다 왔지만, 손님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끝까지 협조해 주셔서 마음은 흡족하다.

'선생님 오늘 친절하고 유익한 해설 고맙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보람차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하시는 일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건강하고 재미있게 좋은 하루 만들어 가시길 기원합니다. 윤재환 올림'

이렇게 보내온 글과 선물로 준 참기름 한병에 마음여리게 감동하는 뜻 깊은 하루였다.

예연서원 외삼문 앞에는 곽재우나무로 불리는 은행나무가 옛스러움을 더한다. 이승호 기자
예연서원 외삼문 앞에는 곽재우나무로 불리는 은행나무가 옛스러움을 더한다. 이승호 기자

예연서원(禮淵書院)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구례길 123에 있다. 다시말하면 비슬산 뒷편 깊숙한곳 달창저수지 안쪽에 가태리 수선화가 예쁘게 핀 구례마을에 있다. 대구이지만 타지 만큼 멀다. 산격동 사무실에서 편도 48km, 자동차로 약 50분 소요된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많은 볼거리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보배 같은 서원이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곽재우(郭再祐)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618년(광해군10)에 ‘충현사’로 처음 세웠고 1677년(숙종3) 사액서원으로 ‘예연(禮淵)’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에 폐쇄된 것을 1984년 사당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곽재우와 곽준의 신도비(神道碑)와 비각(碑閣)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비(碑)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고 하여 ‘땀나는 신도비’라고도 한다. 사당에는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예연서원의 특이한 점은 들어가는 길에 곽재우 느티나무, 당시 정이품 이상 고위 관료만 세울 수 있는 규모가 큰 신도비 2기, 곽준 은행나무가 있는 점이며, 강당은 경의당(景義堂), 사당은 충현사(忠賢祠)이다. 동재와 서재는 없고 망우당 문집 책판 2종 140매를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다. 이 책판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보관,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예연서원은 달창저수지 안쪽 깊숙한 곳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예연서원은 달창저수지 안쪽 깊숙한 곳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이승호 기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는 155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현풍, 시호는 충익이다. 임진왜란 때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내걸고 혼자서 말을 타고 적진에 돌진하여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했으며, 함성으로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적을 물리쳤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의령·창녕·영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공을 세웠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월이며, 조식의 외손녀 사위이자 문인이다. 1585년(선조 18) 정시문과에 뽑혔으나, 글의 내용이 왕의 미움을 사서 합격이 취소되었는 일화도 있다.

1592년 5월 솥바위내루(鼎巖津)를 건너려는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의령·삼가·합천 등의 고을을 지켜냈고, 일본군이 호남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임진왜란 때 경상도 전역에서 큰 활약을 한 최초의 의병장 곽재우 장군에게 간략하게 예를 표하다.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임진왜란 때 경상도 전역에서 큰 활약을 한 최초의 의병장 곽재우 장군에게 간략하게 예를 표하다. 사진 의령군의회 제공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 묘는 예연서원에서 약 10km 떨어진 구지면 대암리에 있다. 가는 길 옆에는 이로정과 낙동강이 있다. 낙동강 건너는 창녕이다. 현풍 곽씨 가족 묘역에 있다. 초입에 아버지인 정암 신도비가 시선을 압도한다. 봉분이 낮고 단촐하여 의아했는데 조성내역을 읽어보니 초기에 평장을 했다 한다. 여러 무덤 중에 봉분이 낮아서 찾기가 쉽지 않다. 단, 이수가 없는 묘비에 가운데 줄에 위에서 부터 사망우당선생곽충익공묘(使忘憂堂先生郭忠翼公墓)란 글씨가 있다. 이 무덤이 망우당 묘이다. 부부 합장 묘라고 한다. 당시 평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존경심이 솟아 오른다. 망우당은 임진왜란 시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장이며 경상도 전역에서 큰 활약을 했다. 그와 관련된 곳은 대구 동촌 망우당공원, 천생산 미덕암, 창녕 망우정(여현정) 등이 있다.

현풍 곽씨 가족 묘역에서 봉분이 낮은 곽재우 장군 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승호 기자
현풍 곽씨 가족 묘역에서 봉분이 낮은 곽재우 장군 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승호 기자

 

tip:
•화려한 문화유산을 꽃피우는 달성군:
달성군(군수 김문오)은 대구광역시 8개 시군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그런 연유로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볼거리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하다. 달성습지 생태학습관, 비슬산치유의 숲 산림치유센터, 사문나루, 도동서원, 대견사, 육신사, 유가사, 한훤당 고택, 화목정, 삼가헌, 용연사 남평문씨 세거지, 송해공원, 마비정 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달창저수지: 예연서원 입구에 있다.
달빛 창문이라 뜻이 아니라 저수지 가운데가 달성군과 창녕군의 경계이므로 두 군의 앞 글자를 따서 달창저수지라 부른다. 1972년도에 준공하였으며 40만평의 넓이에 주위의 푸른 산과 벚꽃나무 숲길이  운치를 더한다. 약 600m의 데크로드도 선책하기 좋게 조성되어 있다.
•현풍 곽씨 관련유적은 십이정려각이 달성군 못골에 있다.
•달창저수지에는 전통가마솥 금산곰탕 (053 616-6212)과 달창 붕어찜 (053 616-8884) 식당이 있다.

예연서원 앞에는 운치 있는 벚꽃나무길에 데크로드가 조성되어 있다. 이승호 기자
예연서원 앞에는 운치 있는 벚꽃나무길에 데크로드가 조성되어 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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