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박목월의 '나그네'
[시를 느끼다] 박목월의 '나그네'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6.15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짧고 간결한 시에 한국의 멋과 정서가 녹아들었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는 1946년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이 함께 발간한 '청록집'에 수록되었다. Pixabay
박목월의 詩 '나그네'는 1946년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이 함께 발간한 '청록집'에 수록되었다. Pixabay

나그네/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출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짧고 간결한 시에 한국의 멋과 정서가 녹아들었다. 한국화에도 여백의 미를 중요시 하듯 간결한 몇 줄의 시에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삶과 철학과 인생관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 그 나그네가 시인 자신인지 아니면 지인인지 어쩌면 상상속의 누구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분명 번잡한 만남보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 같다. 또한 풍류의 멋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자연과 술을 즐기며 홀로 유유자적하면서 삶을 관조하며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보다 달과 구름과 노을과 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는 나그네이기에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걷고 있다. 보리밭 길이 아닌 밀밭 길을 걷는다 함은 밀은 술을 빚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어 선택 하나에도 복합적인 중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본다. 나그네는 천천히 여유롭게 삶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란 시구에서 느껴지듯 오로지 변함없는 외길 인생을 걸어온 지조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술 익는 마을에만 저녁놀이 붉게 탔을까. 허기진 나그네의 마음에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왠지 향기로운 술도 익어가고 있다고 여겼으리라. 그런 마을에서 객고도 풀어보고 싶었으리라. 한 편의 시에서 이토록 많은 의미와 그림을 담아내기도 쉽지 않은 듯하다. 모든 시에는 그림이 있고 모든 그림에는 시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시야말로 수많은 그림을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장편 소설 분량의 이야기까지 함축적으로 품고 있으니 뉘라서 한 줄의 시가 소설 한 권보다 그 의미가 적다 하겠는가. 이 시는 글자 수가 적어서 외기도 쉽다. 한번 외워서 낭송에도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느 품격 있는 자리에서 멋지게 낭송해서 자신의 격을 높여 봐도 좋으리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무철 2021-06-15 12:53:14
술과 여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이 시를 읽으면 베낭에 소주 한 병 찔러 넣고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코로나로 움추려 사는 요즈음, 이런 시를 주시면 어쩌란 말씀입니까?

박남규 2021-06-15 10:58:22
시를 느끼다를 최근들어 솔깃하게 읽고 있습니다
요번엔 박목월/나그네를 잘 널어 놓았네요
6월의 햇살에 빛나는 평을 보며 시의 진면을 보게 됩니다
평론을 따라 시를 골고루 이해 하고 감상함이
너무 좋습니다 초가을 찐살 한움쿰 입에넣고
씹는 구수함이 있네요 권정숙 기자님!
더욱 좋은 시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