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복효근의 '목련 후기'
[시를 느끼다] 복효근의 '목련 후기'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3.14 06:2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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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목련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길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길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 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마늘촛불[ 2017년 심지 ]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기들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지고지순의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사랑이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 있으며 어느 사랑이 절절하지 않고 애달프지 않으랴. 그래서 사랑의 처음과 끝은 모두 아름답기를 바라고 비록 헤어지더라도 동백처럼 시들지 않은 채 일순간에 져 버리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에 따라 얼른 잊혀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복효근 시인처럼 그 여운까지 아끼면서 추억을 반추해 보고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라는 표현이 참 절묘하다. 어쩌면 이런 적합한 표현을 찾아냈을까. 역시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인가 보다.

미친 사랑의 증거가 남아서 때로는 나를 곤욕스럽게 할지라도 그때 사랑했던 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아름다움이었던 걸 기억한다면 쓸데없고 더러운 물건 치우듯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버릴게 아니라 누구도 침범 못할 나만의 기억 창고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곱씹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의 행복을 한 번 더 느껴 봐도 좋으리라.

살다보면 삶이 건조해지고 팍팍해질 때 남몰래 살그머니 꺼내 그날의 달콤 쌉싸름한 감상에 다시 한 번 젖어보며 추억을 반추해 봐도 좋으리라. 내게도 이런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지, 그때는 정말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었지 하며 그 행복을 되새김해 봐도 좋으리라. 그 순간만은 누구와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오직 나만의 보물 같은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이니까. 추억과 남모르는 비밀은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 진다고 어느 시인도 말했다.

추억은 거의가 아름답게 기억된다. 비록 그때는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생각하고픈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그러니 많이 사랑하고 많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그대로 며칠간 더 앓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으로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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