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문무학의 '한때 대구사람들은'
[시를 느끼다] 문무학의 '한때 대구사람들은'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4.14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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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70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권정숙 기자

한때 대구 사람들은 /문무학

 

시상에 존일도 쌨고 또 쌨지만
캐싸도 그 중에서 질로 아름다운 건
마카다 마음 모아가 하나 되는 기데이.

질까에 높은 빌딩 우뚝우뚝 들어서고
땅 밑에 차 댕기는 거 그기 다 아이데이
참말로 잘 사는 건 마, 바로 사는 기데이

요새 대구사람, 대구 사는 우리는
니는 니고 나는 나, 그래 살마 안된데이
대구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데 아이데이

지난날에 대구 사람 우째 살아왔는지
니 한분 생각해 봤나 생각해 본 일 있나
참말로 기똥차도록 장한 일 있었데이

왜놈들이 설치싸턴 1907년 1월 29일
그 놈들이 억지로 매낀 빚 1300만원
그 빚을 갚을라 캤던 기찬 일이 있었데이

그 빚 다 못 갚으면 나라 다 뺏긴다고
2천만이 석 달 동안 담배 끊어 한 달 20전씩
돈 모다 빚 갚자던 일 대구에서 맨 첨 했데이

대동관문회 특별회서 서상돈이 발의하고
8백원을 턱 내놓고 앞장선다 일어선깨네
그 자리 대구사람들 박수치며 함께 했데이

연죽초갑 내삐리고 60전을 내노면서
실행이 귀함이라 김광제가 일났는데
마캉 다 주무이 풀어 고마 2000여원 안 모이나

그런 사람들이 맨들어 논 이 대구를
오늘 사는 우리가 이자뿌면 안 된데이
그들이 살던 방식을 우리가 비아야 한데이

대구서 났다카는 대통령 이름 이자뿌도
서울서 행시하는 사람은 몰라도 개안치만
나라 빚 갚자던 운동 이거 이자뿌면 안 된데이

니캉내캉 마음 모으고 내캉니캉 서로 믿으며
대구를 대구로 키운 이름들 안 이자뿌면
대구는 실로 아름답데이 억수로 존데 된데이

팔공산과 대덕산 그 새에 옹기종기
니맘 내가 알고 내맘 니가 알면
짜다라 이 시상에서 더 부러울 거 머 있겠노

우리 인자 그래 살제이 참말로 바로 살제이
돈 많고 심 샌 건만 쳐다 볼끼 아이라
없어도 안 부끄럽게 당당하게 그래 살제이

-'달과 늪'(1999년, 만인사)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권정숙 기자

문무학 시인이 이 시로 대구사람들 자긍심을 한껏 올려주고 북돋아 주었다. 구수하고 맛깔스런 사투리로 대구사람들의 사려 깊고 아름다운 심성을 자상하고도 살갑게 보여준다. 한일합방 전 일본의 얄팍한 술수에 넘어간 한양의 고관대작들에게 대구사람들이 후련하게 한방 먹인 사건이다. 남자들은 연죽초갑 던지고 부녀자들은 비녀 뽑고 반지 뽑아 동참했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다. 이 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3.1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IMF가 왔을 때 금모으기운동도 용이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인의 말대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일이다.정말 그렇다.                                                       

대구사람들의 진면목을 알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1960년 2월 28일 대구학생의거는 또 어떤가.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던가. 아주 가까이는 2020년 2월 18일은 대구에서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환자수가 폭발하듯 일어나니 대구를 봉쇄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 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사람 사재기 하는 사람이 없었고 대구를 탈출하겠다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소문이 하수상하여 마트에 가보았더니 생필품은 그대로 쌓여 있었고 아무런 불안감이나 위기감을 도무지 느끼지 못하였다. 모두가 아무 일 없는 듯 의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거리에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 들었다. 북적대던 거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복잡하던 지하철도 텅 빈 채 운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타의 모범이 된 도시가 대구다. 대구 사람들은 자존감을 지키면서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도 보여 준 샘이다. 이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떠나 세계 속에 대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잘 살아온 선조들의 유지를 이어 받아 잘못된 일에는 의분을 느껴 결연히 일어나고 옳은 일은 바르고 정대하게 지켜 나가야 하리라. 대구 시민은 어느 모로 보나 전 세계 모범 시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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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근 2021-05-31 11:01:42
대구의 토박이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구를 어쩌면 이처럼도 잘 표현하셨습니까
몇 번 읽어도 또 읽고 싶습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집ㄴ다(*)

무철 2021-04-15 10:15:23
대구의 토박이로서 시인님이 올려 주신 글을 읽으니
대구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다시 살아납니다.
가장 춥고 가장 더운 곳의 명성만큼 할 때는 하는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조이섭 2021-04-14 17:41:04
두 살때 엄마 등에 업혀온 이후로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대구입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도시의 살림이 조금 쪼글어 들어도 사랑하는 고향입니다. 자랑스러운 대구입니다.
문무학 시인님, 권정숙 시인님 고맙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