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를 느끼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1.28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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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2004 민예원]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몇 줄의 글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 한 줄의 짧은 詩가 장편소설 몇 권을 능가할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게 된다. 무심히 피고 지는 꽃 한 송이에 의미를 부여해 꽃의 의미를 확장시켜 무한에 이르게 한다. 많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주는 것 같다.

국화꽃이 피는 것과 소쩍새가 우는 것은 얼핏 보면 아무런 상관도 없으련만 시인에게는 지난 봄 그렇게 애절하게 울어대던 소쩍새가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천둥번개까지도 국화꽃을 피우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의 사유의 확장이 놀랍기만 하다. 간밤에 무서리가 내린 것도 자기가 잠이 오지 않았던 것도 모두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니 그 한 송이의 국화꽃이 얼마나 대단한 꽃이든가.

그립고 아쉬웠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완성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랑하는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니 그 또한 얼마나 고귀하고 자랑스런 자태란 말인가. 삼라만상이 오직 한 송이의 국화꽃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생각까지 든다.

우리 모두는 국화꽃 한 송이보다 얼마나 귀한 존재든가. 모든 우주가 오직 나 한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우리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가 되어 길가에 굴러다니는 낙엽보다 못하게 느껴지니 부디 국화꽃보다 몇 억 배나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스스로를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 역시 귀한 존재임을 결코 간과해서도 안 되겠다.

국화 한 송이에 소쩍새의 애달픈 노래와 천둥치는 하늘의 뜻과 사랑하는 혈육의 정과 무서리 내리는 밤의 내력과 자신의 불면까지 담아낸 시인의 깊은 내공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아무 이유 없이 유명 시인이 되고 명필가가 되든가. 깊은 사유 속에서 하나의 명제를 두고 끝없이 고뇌한 뒤 느낌을 얻어 빚어내는 것이 詩가 아닌가 싶다.

시인이 친일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 당시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詩는 그 시사하는 바와 깊이와 시적인 감흥과 적절한 은유의 맛으로 평가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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