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시를 느끼다]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4.03.04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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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사진 픽사베이
한계령. 사진 픽사베이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한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한국대표명시선100 [2013년 시인생각]

 

문정희 시인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서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했고 동국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서울여자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월간 문학에서 불면이란 詩로 등단했고 2014년~2015년 제 40대 한국시인 협회 회장을 역임한 한국 시단에 큰 획을 그은 여류시인이다.

수많은 명작 시로 특히 여성들의 가슴을 흥건히 적셔준 시인은 결코 어렵거나 난해한 시를 쓰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녀의 시론을 들어보면 좋은 글을 쓰려면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충언한다. 어렵고 복잡한 시를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그저 일상의 소소한 느낌과 감동들을 친구들과 조근 조근 이야기하듯 쓰면 그런 것이 詩가 아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고 있다.

수많은 저서가 있고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詩도 많지만 저 유명한 치마란 詩는 임보 시인의 팬티란 엄청난 답 詩가 있어 詩의 묘미와 재미를 더한다. 오늘은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한 詩,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살펴 볼까한다. 이 詩는 어쩌면 대부분의 여성들의 로망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더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

詩를 살펴보면 한겨울에 죽어도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는다는 자체만으로 무척 낭만적인데 거기에 눈까지 푹푹 내려 한계령의 한계에 묶이고 싶다는 언어유희가 장난이 아니다. 사방이 온통 흰 눈으로 덮혀 있는 동화의 나라에 눈부신 고립 가운데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이고 싶다는 동화 같은 낭만, 이정도가 되어야 가히 시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낭만 가운데서도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환상은 공포로 바뀌겠지.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로 변할지라도 구조의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 결코 손을 흔들지 않겠노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그 헬리콥터는 지금 굶주린 야생조들과 짐승들에게 자비롭게도 먹이를 뿌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만 포탄을 뿌려대던 것이 생각났던 것일까. 시인은 그런 자비에는 감사하지도 않고 옷자락도 보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은 단둘만의 고립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내면 깊숙이에는 헬리콥터에 대한 원망스런 마음도 있는 듯 보인다. 그건 5.18 광주사태를 에둘러 비난해 보이는 듯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마지막 연에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한계령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겠노라고 끝을 맺고 있다. 그것이 단순한 꿈이거나 희망사항으로 보이지 않음은 필자 역시 같은 생각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여심을 저격하는 대표적인 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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