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신현림의 '11월의 사람들'
[시를 느끼다] 신현림의 '11월의 사람들'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3.11.29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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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불꺼진 연탄 같은 것 )
사진 픽사베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불꺼진 연탄 같은 것 )

 

11월의 사람들 / 신현림

 

 

날개도 없으면서 날고 싶다

미칠 수도 없으면서 미치고 싶다

죽지도 못하면서 죽고 싶다

너는 되풀이 말만 한다

 

홀로 밥과 물을 나르기도 힘겨운

겨울 사람들은

사랑마저 쇼윈도 고급 옷만 같아서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지렁이처럼 울었다

 

가난에 시달리며

비루한 노동으로 울지 않으려고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걸레처럼 축축한 자신을

빨랫줄에 널곤 하였다

 

반지하 앨리스 [2017년 민음사]

 

신현림 시인은 시인이면서 사진작가다. 1961년 경기도 의왕시에서 태어나서 아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비주얼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고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동시집, 사진에세이, 영상에세이, 미술에세이 등 수 없이 많다.

그는 반 지하방에서 10년을 혼자 딸을 키우면서 치열하게 살았다고 한다. 또한 철길 옆 두 평짜리 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詩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힘겹게 살아왔고 지금도 詩로 어려운 사람들과 자신을 위로해 가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되어 경제적인 위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초심을 잃지 않고 산다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詩의 첫 연을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들이 나열되어 있다. 비록 날개는 없지만 날고 싶은 꿈을 말했고 미쳐버릴 것 같은데 도무지 미쳐지지 않는다고 푸념하고 있다. 죽지도 못하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지막 행에 너는 되풀이 말만한다고 한다. 여기서 너는 과연 누구인가? 시인 자신이기도 하겠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일러 말함이리라. 시인도 어려웠던 시기를 詩와 희망이라는 두 단어의 위로 속에 살아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연에서 홀로 밥과 물을 나르기도 힘겨운 겨울 사람들이라 함도 계절의 겨울이 아니라 인생의 겨울로 읽힌다. 나이가 비록 젊을지라도 막다른 골목 같은 시점이라면 역시 겨울이 아닐까. 사랑마저도 쇼윈도의 고급 옷만 같아서 감히 엄두도 못내고 사는 사람들은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지렁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겨울바람이라 함은 살면서 겪는 온갖 고난을 말함이겠고 지렁이처럼 우는 것 역시 소리 없이 온몸으로 울었음을 알겠다. 진정 아플 땐 눈물도 안 나오고 소리도 낼 수 없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알리라. 절체절명의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리라.

셋째 연 3~5행에서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걸레처럼 축축한 자신을 빨랫줄에 널곤 하였다 에서 새로운 희망을 예견함은 나만의 생각일까. 비록 꽁꽁 얼어버린 겨울바람일지라도 축축함을 면할 수 있게 말려 주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희덕의 詩에도 있지 아니한가.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절망에 처하더라도 한 줄기 희미한 희망이이라도 있으면 그 희망이 사그라들지 않는 한 살아 낸다고 하니 긍정마인드로 희망을 놓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신현림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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