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시를 느끼다] 장석주의 '대추 한 알'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11.01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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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붉디붉은 호랑이 [ 2005년 애지 ]

   

사진출처: 픽사베이

                   

            

작은 대추 한 알에 모든 걸 담아낸 시인의 관찰력과 혜안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다. 아주작고 흔한 과일인 대추는 과일 중에서도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과일이다. 기껏 제사상에서나 대접받는다고 할까. 그런 대추를 두고 가만히 관찰하면서 따져보면 너무나 좋은 것이 많은 과일이다. 제사상에서 대접 받음은 물론 혼인날 폐백상에도 빠질 수 없는 과일이다. 또 약방에 감초처럼 한약을 지을 때도 거의 들어간다고 한다.

대추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성인병, 노화, 빈혈을 예방하고 항암작용도 있고 면역력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장 건강과 수족냉증과 불면증에도 좋다하니 이쯤 되면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싶다. 예부터 대추를 보고 먹지 않으면 늙는다고 했으니 대추에는 젊어지는 묘약까지 들어 있나보다. 옛사람들이 대추 한 알로 점심 요기까지 한다고 했으니 영양면에서도 탁월한가보다.

시인이 대추를 보고 느낀 점도 남다르다. 대추란 작고 보잘 것 없는 과일을 두고 시종일관 한 우물을 파듯이 끌고 가는 힘도 놀랍지만 대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놀랍다. 대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이런 깊은 사유는 없었을 것이다. 대추가 그냥 저절로 붉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작은 한 알 속에 태풍과 천둥, 벼락과 번개가 들어 있었기에 붉게 익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모양이 둥글어지는 것도 혼자서는 둥글어 질 수는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과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이 들어 있어서 둥글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모든 일이 외부의 다른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여 대추는 세상과 통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나의 화두로 깊은 사유 속을 몰입해 가다보면 모든 이치가 하나로 귀결됨을 보게 된다. 나무가 저절로 자라는 것 같아도 비와 바람과 햇볕, 흙의 도움 없이 자랄 수 없다. 식물이 열매를 어찌 저절로 열리고 익힐 수 있는가. 벌과 나비 또 바람의 도움으로 수정되어 종족을 보존하고 있지 않는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누군가의 도움으로, 응원으로,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힘으로 생성되고 이루어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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