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공광규의 '소주병'
[시를 느끼다] 공광규의 '소주병'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4.29 09: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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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소주병 [실천문학사 2004년]

시인은 짧은 시 속에 우리시대의 아버지에 대한 모든 걸 담아낸 듯 보인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이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술병이 잔에다 자기를 따라주는 건 아버지가 자신의 전부를 자식에게 쏟아 부으면서 헌신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더군다나 한국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못 배운 한, 가난의 굴레를 자식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듯이 애를 쓰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술병, 잔은 자식이 아니던가. 이렇게 속을 다 비워내고 쓸모없는 빈병이 되면 길가나 쓰레기장에 버려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쓰레기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한국의 아버지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잘 표현한 시도 없을 것 같다. 지금의 한국 아버지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는 듯하다. 어머니들은 혼자가 되어도 몸만 건강하면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지만 아버지들은 그게 안 되니 자식들에게 더 냉대 받기 십상이다.

어느 날 바람이 세게 불던 밤 시인은 환청인 듯 바람소리인 듯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게 되어 나가보니 아버지 아닌 빈 술병이었다. 그러나 실은 시인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의 흐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부모와 자식 관계란 부모는 너무나 당연하게 끝없이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의무만 있고 자식은 부모에게 모든 걸 받고 누려도 되는 권리만 있는 듯 느껴지는 요즘 세태다. 권리와 의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원만하지 않을까. 부모와 자식은 인륜이 아니라 천륜이다. 하늘이 정해준 관계라는 뜻일 것이다. 부부가 만나는 건 인륜이다. 각자의 선택이기에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서로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가고 사랑도 가게 된다. 그런데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아래로만 흐르는 것인지 부모님은 조건 없는 사랑을 주지만 세월 탓인지 자식은 꼭 그렇지만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어쩌면 인간과 조물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끝없는 사랑을 외면하고 제 마음대로 살다가 힘들고 지치면 찾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원망하고 존재마저 부정한다.

공광규 시인의 술병과 잔의 비유가 어찌나 절묘한지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저 일상에서 흔히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빈병을 詩의 소재로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역량이 대단하다. 주고 또 주고 자신은 껍데기만 남은 빈병인 채 버려지는 소주병을 우리의 부모님과 연결지어 시를 쓴 은유가 아프지만 더 없이 적절한 비유 같이 느껴져 가슴이 아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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