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를 느끼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12.14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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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봄에 피고 지니 필 때는 찬란히 빛나는 행복한 봄이었을 것이고 질 때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의 봄이었으리라
모란이 피기까지는. Pixabay
모란이 피기까지는. Pixabay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2004년 민예원 ]

 

김영랑 시인의 모란 사랑은 유별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모란이 가장 많은 곳이 전남 강진이라 한다. 그 강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모란에 대한 그의 유별난 사랑이 이해되기도 한다. 시인은 대부분의 삶을 고향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집주위에 수백그루의 모란을 심어 즐겨 감상했다니 모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짐작이 간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詩는 시인의 대표작이기도하고 우리 모두 애송하는 좋은 詩이기도 하다.

시인은 모란이 피는 오월이 가장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려 천지에 모란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면 그뿐, 한해가 다 가고 만다고 노래했으니 얼마나 지극한 모란사랑인가. 모란이 보이지 않는 우울한 시간에는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살았으리라. 찬란한 슬픔의 봄은 역설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모란이 봄에 피고 지니 필 때는 찬란히 빛나는 행복한 봄이었을 것이고 질 때는 감당키 어려운 슬픔의 봄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그에게는 봄은 찬란히 빛나기도 하지만 슬픔도 동반되는 아주 아이러니한 봄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모란을 좋아하고 모란이 피는 봄을 좋아하고 모란이 지면 혼자 열병을 앓듯이 슬퍼하고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기를 반복하면서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기쁨과 슬픔이 계속 교차해 오가며 우리를 희로애락애오욕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지 않았던가.

김영랑 시인이 모란에 빗대어 노래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모란을 좋아했던 건 분명하지만 단순히 꽃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라고 보여 진다. 모란은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이었을까 아니면 잃어버린 조국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나의 상황에 맞게 대입해 보면서 즐기면 詩가 더 가까이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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