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를 느끼다]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12.01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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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2019년 니들 북]

양재완 사진작가 제공
양재완 사진작가 제공

우리 모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엄마가 가족을 위해 아침부터 발동동거리며 일해도 당연한 일이었고 아버지께는 가장 만만한 아내였고 자식들에게는 너무나 편안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배려 없이 걸핏하면 화내고 무엇이든지 요구하면 다 들어주는 존재로만 알았습니다. 집안에서는 남은 밥이나 반찬 먹어 치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맛없고 상하기 시작하는 음식은 엄마 차지었습니다. 새 옷 한번 맘 놓고 사 입지 못하고 늘 헌 옷에 헌 양말이나 꿰매 신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싸워서 남의 애를 다치게 해도 엄마가 죄인이 되어 사과를 하러 다녔고 남편이 밖에서 실수를 해도 아내인 엄마가 뒤처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도 이웃에 엄마가 빌리려 다녔습니다. 친척들 길흉사를 챙기는 것도 엄마였고 외갓집, 친가 어른들 생신이나 제삿날 챙기고 차리는 사람도 엄마였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험한 일은 모두 엄마가 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도, 숙제를 안 해가도, 심지어 성적이 떨어져도 모두 엄마의 잘못이 되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가 약한 여자라는 걸 간과하고 살았습니다. 엄마 자신조차도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 듯 했습니다. 엄마도 처녀 때는 바퀴벌레 한 마리만 봐도 질겁을 하던 엄마였지만 아이가 아프면 업고 십리 길도 맨발로 뛸 수 있고 달려오는 자동차도 겁내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 엄마였습니다. 외할머니에게는 엄마도 연약하고도 소중한 사랑스런 딸이었습니다. 남편이나 자식들은 엄마의 가슴에도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으리라는 상상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엄마도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속에 소설 열두 권이 들어있고 가슴속에는 시가 산더미인 줄 몰랐습니다. 마음으로 쓰다가 버린 편지도 수백 통은 될 겁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모르고 살았던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존재감이 확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이 엄마였고 돌아가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돌아가시고나면 가장 뼈저리게 후회되고 아플것 같은 사람도 엄마일겁니다. 돌아가신 뒤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신다면 계실 때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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