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신경림의 '갈대'
[시를 느끼다] 신경림의 '갈대'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8.01 08: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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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농무[1975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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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 출생이며 1955년에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이후 10년간 침묵하다 1965년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첫 시집 [농무]를 출간하면서부터 신경림의 시는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주제로 많이 쓰여 졌지만 등단 초기의 서정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먼저 이 시를 대하면서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시인도 이 말이 생각났던 걸까. 갈대를 바라보면서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간과 너무나 약해서 작은 바람에도 쉼 없이 흔들리는 갈대를 연관 지었으니까. 첫 행이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라고 시작된다. 어쩌면 언제부터가 아니라 처음부터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울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제 몸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고 그 흔들림이 바람의 탓도 아니요 달빛 때문도 아닌 자신의 울음 때문임을 알았다.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외부적인 요인이기만 할까. 모두가 자신이 만들어 온 결과가 아닐까.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잘되면 자신이 잘나서고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도 있다. 조상 탓, 부모 탓, 환경 탓, 나아가서 나라 탓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자신이 살아온 결과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부모를 잘못 만났더라도 극복하고 성공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부모를 잘못 만났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환경을 벗어나려 노력을 배가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시 시로 돌아가 음미해 보자. 갈대는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자기의 조용한 울음이라는 걸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세상의 어떤 소용돌이치는 비바람보다 자신의 조용한 울음이 갈대를 계속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 내부의 미세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무엇보다 크게 지속적으로 작용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속으로 조용히 울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아픔이 다르듯 극복하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갈대처럼 조용히 울 수도 있고 뭉크의 절규처럼 온몸으로 울 수도 있다. 다만 삶 속에는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도 공존하니 산다는 것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낫다니 살고 볼 일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다보면 삶이란 그야말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요즘 말로 화양연화의 때에 이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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