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느끼다 ]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 시를 느끼다 ]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8.31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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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한결같은 봄날이 이어지고 꽃길만 걸을 수 있으랴. 나를 흔드는 바람을 두려워 말고 상대의 변심에 크게 낙망할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을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2004년 민예원]

 

시인의 좋은 덕목 중 하나가 관찰력이라고 한다. 어떤 사물이든지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해 보면 그 사물의 특성이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람이 부니 꽃이 흔들리나 보다 하며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가 쉽다. 그런데 도종환 시인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면서 우리의 고달픈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1연에서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랑을 비유해 보여주면서 갈등 없는 인간관계가 없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연인 사이에도 시시때때로 흔들리니 말이다. 2연에서는 바람과 비에 젖으면서도 따뜻하게 꽃잎을 피우는 꽃과 우리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 준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듯 우리의 삶도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결국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모진 풍파 견디면서 아름답게 사랑하며 정을 나누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듯 보인다.

살아가노라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순서도 없이 오간다. 예기치 못한 일이 우리 삶에서 그 얼마나 많이 일어나던가. 바람과 비에 젖으며 이리 저리 부대끼며 굴러가 몽돌이 되고 모래알이 되기도 한다. 어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시달림 없이 항상 일정한 온도에 목마름 없이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으랴. 땡볕에 목마르기도 하고 비바람에 젖으며 시달리기도 하리라. 때로는 해충의 공격도 피할 수 없으리라. 가만히 한 자리에 있는 식물도 이러하건데 왼종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사람에게는 더 많이 뜻하지 못한 일도 생길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다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안 되는 것이 또 삶이 아닌가 싶다. 사람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고 상대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어찌 한결 같은 봄날이 이어지고 꽃길만 걸을 수 있으랴. 나를 흔드는 바람을 두려워 말고 상대의 변심에 크게 낙망할 필요도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어찌 천지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으며 어쩌다 예측한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많다. 요즘같이 일기예보를 미리 안다고 해도 태풍을 막을 수도 없고 가뭄도 어찌 할 수가 없다. 다만 조심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뿐이다. 겪을 건 모두 겪으면서 지혜롭게 이겨낼 때 풍파에 대한 면역력도 생기고 삶의 근육도 튼튼해지리라. 날씨가 수시로 변하듯 세상 모든 건 수시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꽃만 바람에 흔들리며 비에 젖겠는가. 사람은 더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잘 적응해 나갈 때 나를 바로 세워 나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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