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이외수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시를 느끼다] 이외수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3.11.15 1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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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나지막히

그대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 쉴 때까지[2010년 해냄출판사]

 

이외수 작가는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2022년 향년 75세 나이에 타계했다. 학력은 춘천 교육대학을 중퇴했으며 1972년 단편소설 ‘견습어린이들’로 데뷔했다. 2018년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학장을 지냈다. 수상경력은 2017년 제1회 대한민국인권대상을 받았다.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소설가로 더 알려져 있고 수많은 주옥같은 소설을 남겼다.

그의 외모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을 주지는 못했다. 더부룩한 머리나 헝클어진 수염은 세수도 하지 않고 빗지도 않은 듯 늘 지저분했다. 사실 세수도 목욕도 잘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필자는 만난 적도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지만 결혼은 아주 아름다운 미쓰 강원과 했다니 이 또한 알 수 없는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의 문체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그런 외모에서 이런 빛나는 글이 나왔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의 글은 유려하며 고결하고 맑고 단아하다. 그의 소설을 한번 읽어본 사람들은 중독이나 된 듯 그의 소설을 탐닉하게 된다고 했다. 내용까지도 참신하여 충분히 관심을 끌만 했다. 사람의 뇌는 무한확장이 가능하다 하였으나 상상 속에 틀을 짜고 만들어가는 소설과정이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니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나보다.

이 詩는 조금 긴 듯한 제목조차 그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느 얘기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이 신부님을 찾아가 ‘신부님 저는 죽어가고 있어요.’ 했더니 신부님이 대답하길 ‘우리는 모두 착각 속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만 사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고 있답니다.’ 했다고 하더니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니듯 만남과 이별도 하나의 사건에선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첫 행에서 죽어가는 것을 저물어 간다고 멋진 표현을 쓰고 있다. 이어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디 흔들리는 게 사랑뿐이랴. 사랑도 우정도 신의도 믿음까지도 자주 흔들린다. 허공에 비스듬히 불안전하게 떠 있는 지구에 살기 때문일까 우리 모두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고 한다. 이 두 행이 절창이며 이 詩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이리도 선명히 그릴 수 있는 그는 분명 언어의 연금술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져 간다고 하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노래가 되는 인연이라고 너무 들떠 자랑하지 말고 상처가 되는 인연이라고 너무 아파말라는 경고와 위로가 뒤섞인 시구(詩句)로 모든 것은 시간 앞에 무위하게 지워져 간다고 일러주는 듯하다.

자신의 내면을 은근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외롭게 홀로 앉아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무정하게 떠나간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혼자임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군더더기가 없는 아주 깔끔하고 선명한 좋은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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