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느끼다 ] 유치환의 '행복'
[ 시를 느끼다 ] 유치환의 '행복'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9.30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픽사베이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네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 2004년 민예원 ]

 

                      사진 픽사베이

 

얼핏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 보다 사랑 받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건 사랑에 도취되어 그 행복의 늪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온 마음 다해 사랑했다면,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진정 맛보았다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어떤 반대급부도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주므로 족하고 기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은 주면 줄수록 행복한 사랑이다. 친구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받기를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참으로 묘하다. 조건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나도 타산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때로는 무조건 받기만을 바라기도하니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얼굴에 환한 꽃이 피고 웃음이 샘솟는다. 남녀의 사랑은 어떤 사랑과도 비교가 불가하다. 남녀 간의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생각만 해도 기쁘고 가슴이 울렁거리니 어찌 숨길수가 있으랴.

이렇게 좋은 사랑이 아름답게만 열매 맺을 수는 없는 것인가. 서로 욕심이 과하다보면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주고 싶은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지게 된다. 마음에도 참 평화와 기쁨이 오리라. 대중가요에도 그런 가사가 있다.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아무런 바람 없이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으면 그 마음에는 천국이 깃들고 많은걸 기대하고 그 기대에 아주 못 미치게 되고 나아가 상대가 변심까지 한다면 그 마음은 지옥이 되리라.

이 시를 쓸 때만해도 참 낭만이 넘치는 시대였던 것 같다. 핸드폰은 물론 이메일도 안 되고 가정 전화조차 아주 귀한 때라 오로지 통신 수단은 편지 뿐 이었으리라. 연인에게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체국으로 가 창에 기대여 몇 자 적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낭만적인 모습이며 낭만의 정서가 넘쳐나는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말이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지극한 사랑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거나 상처를 주는 사랑이라면 본인들의 감정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재고해 보고 가슴에 묻어 두는 것도 좋으리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무철 2021-10-04 21:39:04
청마의 자술서를 보면.
그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더 희열를 느꼈다고 봅니다.
'사랑을 받는 일은 내가 소유됨이요,
내가 사랑함은 내가 소유하는 때문이다'

한 여인(시조시인. 이영도)을 두고 20년 동안 5, 000통의 연서를 보낸 청마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권오형 2021-10-04 03:54:35
유치환의 대표시는 학생때 배운 깃발 ㅡㅡ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행복이란 이 시도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옛날 우체국은 전화, 전보, 우편 등의 서신위주로 운용되었는데 그때의 모습을 잘 묘사되어서 추억을 일게하는 서사적인 풍경입니다.
현재는 무선전화기 덕택에 우체국이 서신보다 금융과 배달 업무에만 치중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입니다.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택한다'는 항간에 떠돌든 말과 배치되는 시인의 관점이네요.
어제 TV에서 시티 오브 엔젤 이란 영화를 봤는데 극중 케서방(니콜라스 케이지)이 한 말과 시인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ㅡㅡ' 느낌없이 천사로 무한히 오래 사는 것보다 한 순간 만지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사는 것이 훨씬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