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문정희의 '흙'
[시를 느끼다] 문정희의 '흙'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3.30 16:4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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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흙 //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 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3년 시인생각]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흙의 이미지와 흙이 지닌 그 부드러움과 흙의 효용성에 대해 너무나 깊이 그리고 자세하게 그린 듯이 눈으로 보여 주는 詩다. 먼저 이 詩를 대하노라면 흙이 주는 이미지 탓인지 태곳적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농부의 마음처럼 겸허해짐을 느끼게 된다.

시인은 첫 연에서 흙이 가진 것 중 제일 부러운 것이 흙의 이름이라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물의 이름을 맨 먼저 지어 부를 땐 그 특성과 본질을 파악하여 불렀으리라. 흙 흙 흙 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노라면 심장 저 깊은 곳에서 눈물냄새가 나고 두 눈이 젖어온다 함은 그 음이 우리가 슬퍼서 흐느낄 때 나오는 울음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고 짐짓 말했지만 어찌 최고의 지성인인 시인이(동국대 석좌교수) 몰랐을 리가 없다. 너무나 잘 알지만 보다 깊은 우주섭리에 대한 겸손이었으리라. 도공이 흙을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달 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을 일러 말했음이리라. 하여 그것은 창조주가 흙을 주물러 인간을 만든 것과 일맥상통하게 느껴진다. 달 항아리 빚는 것을 낳는다고 한 표현은 하나의 새 생명의 탄생으로 느껴져 참으로 엄숙하고도 경이롭다.

흙의 가슴에 한줌의 씨앗을 뿌린다는 부분도 절창이다. 그냥 흙에다 씨앗을 뿌린다고 하지 않고 흙의 가슴이라 한 것은 아무나 생각해 낼 수도 없을 뿐더러 가슴이란 그 단어가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수확할 때 60배, 100배가 되어 돌아오는 기적 같은 일도 그냥 농사라 부르는 농부의 마음도 역시 흙을 닮아있다.

연 끝 부분에 ‘하늘이 우물을 파 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노래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이 詩의 백미이며 절창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어 하나하나가 유의미하게 살아 있어 한자라도 더 보탤 필요도 없고 뺄 수도 없는 완벽한 싯귀다. 그것은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을 닮게 빚어 혼을 불어넣은 또 다른 자신을 혼탁한 세상에서 건져 올리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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