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조지훈의 '승무'
[시를 느끼다] 조지훈의 '승무'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8.12 08: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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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 화백의 승무도(1937)
장우성 화백의 승무도(1937)

 

 

승무 //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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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시인(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청록파 시인(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조지훈 시인은 1920년생이며 경북 영양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동탁이며 지훈은 그의 아호라고 한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이라는 시로 등단하였다.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며 48세로 타계했으나 주옥같은 많은 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승무, 낙화, 사모 등이 있다.

이 詩는 눈으로 보는 듯 장면들이 그려진다. 우선 승무를 추는 여승의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얇은 사로 된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혀져 나비처럼 보인다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는 고깔에 감추어져 잘 보이지도 않건만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친절하게도 부연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렇게 인물을 잘 그려 보여주고 다음은 주변 환경까지 잘 그려 보여준다.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사이로 달이지고 있다며 장면 묘사도 곁들인다.

5연에서는 소매가 길어서 하늘이 넓은 것 같이 말해주니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 긴 소매의 원활한 춤사위를 위하여 하늘이 넓게 존재해 주는 듯하다. 승무에 도취되어 있는 시인의 시각으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독자 역시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는다면 훨씬 더 시가 와 닿으리라.

필자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고운 시어들에 우선 매료되었다. 어쩜 이토록 고운 시어로 그림을 그리 듯 묘사를 잘 했을까 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고와서 서러워라,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 번뇌는 별빛이라 등 너무나 고운 시어들이 춤사위 보다 더 현란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다. 특히 나빌레라는 시어는 너무나 아름다워 상호나 연서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 같다.

행간마다 소복하게 쌓여있는 별빛보다 찬란히 빛나는 시어들의 잔치지만 그 중 제일은 7연의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이 행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행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리라. 번뇌를 이겨내는 힘을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번뇌 자체가 별빛만큼이나 선명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또 세상일이나 번뇌나 모두 잠시 잠깐 후면 별빛처럼 스러진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으리라.

어떻게 해석하든 시는 발표되는 순간부터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몫이라니 각자가 보이는 만큼 보고 느낌대로 느끼면서 즐기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는 수미상관이 너무나 잘 이루어져 있다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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