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무 //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2004 민예원]

조지훈 시인은 1920년생이며 경북 영양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동탁이며 지훈은 그의 아호라고 한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이라는 시로 등단하였다.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며 48세로 타계했으나 주옥같은 많은 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승무, 낙화, 사모 등이 있다.
이 詩는 눈으로 보는 듯 장면들이 그려진다. 우선 승무를 추는 여승의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얇은 사로 된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혀져 나비처럼 보인다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는 고깔에 감추어져 잘 보이지도 않건만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친절하게도 부연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렇게 인물을 잘 그려 보여주고 다음은 주변 환경까지 잘 그려 보여준다.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사이로 달이지고 있다며 장면 묘사도 곁들인다.
5연에서는 소매가 길어서 하늘이 넓은 것 같이 말해주니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 긴 소매의 원활한 춤사위를 위하여 하늘이 넓게 존재해 주는 듯하다. 승무에 도취되어 있는 시인의 시각으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독자 역시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는다면 훨씬 더 시가 와 닿으리라.
필자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고운 시어들에 우선 매료되었다. 어쩜 이토록 고운 시어로 그림을 그리 듯 묘사를 잘 했을까 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고와서 서러워라,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 번뇌는 별빛이라 등 너무나 고운 시어들이 춤사위 보다 더 현란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다. 특히 나빌레라는 시어는 너무나 아름다워 상호나 연서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 같다.
행간마다 소복하게 쌓여있는 별빛보다 찬란히 빛나는 시어들의 잔치지만 그 중 제일은 7연의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이 행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행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리라. 번뇌를 이겨내는 힘을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번뇌 자체가 별빛만큼이나 선명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또 세상일이나 번뇌나 모두 잠시 잠깐 후면 별빛처럼 스러진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으리라.
어떻게 해석하든 시는 발표되는 순간부터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몫이라니 각자가 보이는 만큼 보고 느낌대로 느끼면서 즐기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는 수미상관이 너무나 잘 이루어져 있다고 보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