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마종기의 바람의 말
[시를 느끼다] 마종기의 바람의 말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4.03.1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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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염원으로 흐드러지게 핀꽃
누군가의 염원으로 흐드러지게 핀꽃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곁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이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은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안 보이는 나라 사랑 [1980년 문학과 지성사]

자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마종기 시인은 1939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 유명한 마해송 동화작가다. 학교는 서울대학 의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詩, 해부학교실로 등단했고 경력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방사선동위원소 실장, 연세대학 의과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수상은 2021년 제24회 가톨릭문학상, 2017년 제6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을 받았다.

바람의 말이라는 이 詩는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 조용필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과 내용과 제목까지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누가 누구의 것을 표절했는지 궁금해 알아보았더니 마종기의 詩가 1980년에 먼저 발표되었고 조용필의 노래는 1993년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작사가인 양인자가 마종기 시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가 아주 오래 전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로 노래를 처음 만났다. 드라마의 내용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노래에 흠뻑 빠져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끼리의 이야기가 아니고 죽은 영혼과 살아있는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이다. 비록 죽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람으로 구름으로 꽃으로 옆에서 지켜주며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라는 메시지와 같다.

1연과 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詩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곡진한 사랑에 눈물겹다. 1연은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죽어서 바람으로 찾아오고 함께 살았던 땅 한모서리에 꽃나무심어, 만나서 얻은 모든 괴로움도 날려버려 주겠다는 지극한 애정표현이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라는 간곡한 염원이기도하다.

2연은 살아있는 者의 答 詩로 읽힌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하고 반문하듯이 2연이 시작되고 있다. 그 말이 참을 수 없이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산 者가 무엇을 어찌 다 안다고 세상의 잣대로 재고 살 것인가. 그러니까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환청이라도 들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나를 잊지 마’ 하는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기대하며 이 詩는 끝을 맺는다.

단 두 연으로 된 詩지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아주 멋진 詩다. 죽은 자와 산자의 교감도 그렇고 죽음이 비록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 지라도 절대로 끊어질 수 없다는 신념도 놀랍다. 첫 연에서 마음을 전하고 두 번째 연에서 答이 詩가 되는 시인의 구성 능력도 아주 독특하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절대적인 사랑이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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