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조지훈의 '낙화'
[시를 느끼다] 조지훈의 '낙화'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12.31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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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라는 시를 음미하노라면 은둔자의 고즈넉한 외로움과 자연과 하나 된 듯한 평화로움이 함께 전해지는 듯하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전집1 [ 1996년 3월 나남출판 ]

 

조지훈 시인은 경북 영양 출신이며 본명은 조동탁이다. 박목월, 박두진과 더불어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이다. 또한 많은 명작 시를 남겼다. 낙화라는 시를 음미하노라면 은둔자의 고즈넉한 외로움과 자연과 하나 된 듯한 평화로움이 함께 전해지는 듯하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하는 첫 연부터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 당긴다. 사람들은 나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 어린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돌을 탓하며 아이 보는데서 돌을 땟지 하고 나무란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남 탓으로 돌리는 습성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꽃이 지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라 질 때가 되었다는 자연의 순리 때문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꽃은 짧게 활짝 피었다가 미련 없이 져버리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사람도 헤어짐이 없이 영원히 함께 산다면 애틋한 마음이나 사랑스런 마음이 덜하지 않을까. 모든 건 변하기에 예측할 수 없는 그 변화 때문에 애착을 느끼게 되고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란 셋째 연도 예사롭지 않다. 귀촉도는 두견이과에 속한 새로 알려져 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애처롭게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지 슬픈 사람에게는 슬픔이 배가되어 그야말로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도 너무 기가 차게 슬플 땐 하늘도 낮아지고 먼 산도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착시를 종종 느끼기도 한다. 꽃이 지는 밤 촛불을 끄고 하얀 미닫이에 어리는 꽃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인가. 그 미닫이가 우련 붉어진다 함은 보일 듯 말 듯 붉어져 보이니 시인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어느 시인이 말했다. 동짓달 깊은 밤 홀연히 잠이 깨어보니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쳐다보노라 한 시간이나 문을 열어 놨다가 감기가 들었는데 그 감기의 열 기운조차 달콤했노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쯤 되어야 시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곱 번째 연에 묻혀 사는 이라고 표현함은 말년에 고향인 경북 영양군 일월면에 은거하면서 시를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연에 꽃이 지는 아침에는 울고 싶다고 했다. 세상 모든 이별은 슬프다. 슬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아름다운 꽃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데 어찌 슬프지 않으랴. 허긴 꽃이 지는 아침은 기쁘다고 말하는 엉덩이에 뿔 난 사람도 있으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라 하니 감상은 읽는 독자에 맡김도 또한 마땅치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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