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숙의 '너무 좋아 불안한'
권정숙의 '너무 좋아 불안한'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10.25 16:2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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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7. 봉무공원에서 만난 뽀미
2019.10.17. 봉무공원에서 만난 뽀미

 

권정숙의 ‘너무 좋아 불안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대역죄는 우리가 짊어졌다

개새끼부터 개만도 못한 놈, 개뿔, 개코, 개떡 등

개도 안 물어갈 개 자가 우릴 괴롭혔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나 몰래 천지가 개벽한 것일까

내가 상전이다

집안 서열도 최상이며

가족들도 비싸 못 먹는 한우를 나는 먹는다

 

그것뿐인가

이제 머리꼭대기에 왕관처럼 개 자를 쓰고 다닌다

개좋다

개멋있다

개재밌다

개부럽다

개는 best of the best에만 붙는다

 

우리는 그저 주인에게 충성이나 하고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너무 받들어주니 오히려 불안하다

 

달밤이면 달을 쳐다보며

없는 성대로 왈왈 짖어보고

화창한 봄날에는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면서

불안을 잠재운다

 

시집 『고요는 무채색』 북랜드. 2019. 09. 25.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뜻의 교감交感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언제부턴지 이런 정서가 사람끼리의 문화만은 아닌 현실이 되었다. 반려동물이 대세인 세태를 반영하듯 개엄마, 개아빠로 인연의 폭이 넓어졌다. 나도 ‘리베’라는 애완견의 엄마였던 적이 있었다. 오래 전에 곰팡이 사료 파동 때 희생된 요크셔트리어다. 이 품종은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요크셔와 랭커셔 주에서 쥐를 구제하기 위해 소형화시켜 개량한 것으로 알려진다. 성견이 돼도 앙증맞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주인과 떨어지기를 싫어한다. 집착과 질투심도 강하다.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다. 아무튼 개엄마, 개아빠로 지내다가 서로 개사돈이 된다면 이 또한 큰 인연이겠다.

세상의 모든 詩가 양복을 입은 듯 어깨에 힘 잔뜩 넣고 점잔만 뺀다면 그것도 식상하지 않을까? ‘너무 좋아 불안한’ 반어적인 제목부터 위트가 있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개다. 소리 내어 읽기조차 거시기한 직설화법이 골계미를 선사한다. ‘개새끼부터 개만도 못한 놈, 개뿔, 개코, 개떡’, 예전에는 ‘개’라는 한 음절 낱말이 풍기는 뉘앙스가 부정적이었다. 무릇 개 팔자 상팔자 시대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것인지 개의 대접이 최고조에 이른다. ‘개좋다, 개멋있다, 개재밌다, 개부럽다’ 젊은이들이 접두사 개를 붙여서 만든 신조어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된다. 그런데 ‘없는 성대로 왈왈’ 짖으며 불안을 잠재운다니 돌연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