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시를 느끼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11.15 08: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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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생가터에 세워진 한용운 동상
만해 한용운의 생가터에 세워진 한용운 동상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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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법복입은 초상화
만해 한용운의 법복입은 초상화

 

한용운은 1879년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시인이며 승려이기도한 그는 독립운동가이기도하다. 법명은 만해이며 본명은 한정옥이다. 3.1절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중 하나였던 만해는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그리고 중도에 변절한 사람들과는 상종도 않을 만큼 기개가 대단했다. 그런 만해 한용운은 안타깝게도 해방되기 바로 전 해 1944년 타계하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염원하던 독립을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詩를 보노라면 우선 제목부터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무엇을 알 수 없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다. 그러고 나서 한 행 한 행 읽어 가노라면 아주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승려였기에 부처님의 존재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왠지 필자의 마음에는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랑으로 느껴진다. 어떤 詩든지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 하지 않든가. 자신의 느낌대로 읽으면 될 것같다.

첫 연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우주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느낌은 너무 확대 해석이란 생각이 든다. 좁은 소견으로는 이별한 님의 자취를 추억하는 듯 보였고 둘째 연도 셋째 연도 그러하다. 모두가 님의 얼굴로 보이고 님의 입김같이 느껴지고 님의 노래와 님을 향한 시가 아닐까.

마지막 연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시인이 승려였기에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음 생에는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이 또한 윤회설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여리고 여린 인간의 영혼등불이 부처님을 지키는 등불이 될 수 있을까. 다만 자신이 사랑한 한 작은 영혼을 위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이 詩에서도 과연 한용운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적재적소에 합당한 언어의 구사력이 詩를 쫀득쫀득하고 감칠맛이 돌게 하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 시의적절한 비유가 詩를 더욱 쉽게 이해가 되게 하고 詩를 詩답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무튼 깔끔하고 아름다운 문맥들로 이루어진 아주 좋은 詩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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