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노천명의 '고별'
[시를 느끼다] 노천명의 '고별'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12.30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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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노천명의 KBS 부산 중앙방송국 시절
시인 노천명의 KBS 부산 중앙방송국 시절

 

고별 // 노천명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

 

고도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나면

정든 책상은 고물상이 업어 갈 것이고

아끼던 책들은 천덕꾼이가 되어 장터로 나갈게다.

 

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시기하던 이들

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

마지막 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

 

우정이라는 것, 또 신의라는 것,

이것은 다 어디 있는 것이냐

생쥐에게나 뜯어먹게 던져 주어라.

 

온갖 화근이었던 이름 석 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

나를 어디 떨어진 섬으로 멀리멀리 보내다오.

 

눈물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있고

거기 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

 

한국의 애송시 [2007년 글로북스]

 

노천명 시인
노천명 시인

 

노천명 시인은 1912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1957년 서울에서 향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본명은 노기선이었으나 어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아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는데 이로 인해 하늘로부터 다시 받은 목숨이라 하여 천명(天命)으로 개명했다.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바로 중앙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다. 1935년 <시원> 창간호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다른 여성 시인들과는 다른 명확한 詩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었는데 일제를 찬양하고 일제에 일조한 이력을 가졌기에 그의 말년은 무척 외롭고 괴로웠던 것 같다. 잘 나갈 때 함께했던 지인들도 다 떠나고 난 후 고별이란 시가 쓰여진 것 같다. 첫 연에서 바로 말하고 있다.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사람들이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보거나 혹은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고 한탄하고 있다.

청춘을 바친 이 땅에서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고 한다. 용수란 죄수들의 얼굴을 가리는데 쓰던 갓이니 비록 갇혀 있지는 않으나 죄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말일게다. 해방 후 그는 다른 친일 부역자들처럼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하지 않았던 걸까. 초년의 그의 이력이 주홍글씨가 되어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이 젊어 한 때 잘못된 선택이 평생의 멍에가 된 것 같다. 이로 미루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눈앞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심사숙고하여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면 크게 후회는 없을 듯하다.

셋째 연에도 넷째 연에도 계속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고도라도 좋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낯선 곳으로 보내달라 한다. 다섯째 연에서부터는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듯하다. 친하던 사람들과 시기하던 사람들과도 마지막 이별의 잔을 나누려고 시니컬하게 외치고 있다. 우정, 신의 모두를 부정하고 생쥐의 먹이로 던지라 한다. 이름 석 자마저도 갈기갈기 찢어 바다에 던져버리고 멀리멀리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그의 고통과 비애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마지막 두 연에서는 좀 진정이 된 듯 배신같은 건 없는 무생물들인 마을과 집들에게 조용히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있다. 하늘과 별은 어디에나 있겠지만 자유란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게 아닐까.

노천명의 고별이란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고 똑똑하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시인은 왜 그런 선택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다갔을까. 그의 수많은 좋은 詩마저 외면당해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나라를 반역한 죄가 아닐까 싶다.

한 때의 잘못된 선택으로 연약한 여자의 몸과 마음으로 이런 수난과 고통을 감내해야 함에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와 뉘우침이 있었다면 하늘도 용서했으리라. 잘못을 하기는 쉬워도 지워지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하여 결론은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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