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김동원의 '오십천'
[시를 느끼다] 김동원의 '오십천'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7.01 0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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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작가 무철 양재완님의 자품
여행 사진작가 무철 양재완님의 작품

 

 

오십천 // 김동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 구름 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 오십천은 청송 주왕산에서 발원해 영덕읍을 가로질러 강구항으로 흘러듦

 

고흐의 시[2020년 도서출판 그루]

 

여행 사진작가 무철 양재완님의 작품
여행 사진작가 무철 양재완님의 작품

 

 

김동원 시인은 영덕 강구항 옆에 있는 작은 항구 구계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오십천이란 詩는 어릴 적 홀어머니와 함께 오십천 천변에 꽃구경 갔던 추억을 절제와 암시를 통해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누구나 어릴 때는 순수 그 자체이겠지만 김동원 시인은 유난히 순수했던 소년이었던 것 같다. 자기 집 앞에 언제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태양은 그 곳에서 그의 어머니 말씀대로 장작불 타듯이 솟아오르니 세상 어디나 바다가 있고 태양도 모두 바다에서 떠오르는 줄 알았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도시로 전학 온 후 드디어 동해바다는 동해에만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 詩에서는 어머니와 봄날 오십천 천변에 꽃구경 갔던 추억을 진술하듯 술술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시인만의 감성으로 시의 맛을 돋우어 주고 있다. 강가에 외발로 선 백로라든가 봄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 개울이 생긴다는 화사한 복사꽃에 대한 묘사는 시신이 내려야만 얻어낼 언어가 아니던가.

어느새 몸은 바뀌고, 로 시작된 두 번째 연에서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와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과 아내를 꿈꾸듯이 내려다보면서 장자의 호접몽을 떠 올렸으리라. 지금, 어린 내가 꿈에서 결혼하여 가족과 어머니와 추억이 있는 곳으로 꽃구경을 왔는지 어른이 된 내가 꿈에서 어머니와 꽃구경을 왔는지 아리송한 느낌이다.

그의 시를 보면 그의 詩에 대한 사랑과 폭 넓고 깊은 지식, 그리고 심오한 철학이 행간마다 별처럼 숨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읽는 독자가 얼마나 이해를 하느냐에 따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초등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만큼만 알 것이고 대학 정도의 수준이라면 역시 그만큼 알 것이다. 아무리 폭이 넓고 깊은 사유의 지성인일지라도 시인 자신 만큼의 해독은 어려우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시는 시인이 신경쇠약으로 혼몽한 상태에서 극심한 우울과 공황장애로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을 때 죽기 전에 가족들과 꼭 한번 가보고 싶어, 가본 후 쓴 것이라 한다. 마음으로 뵙고 온 어머니의 도움 덕분인지 그때부터 서서히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동원 시인의 시는 은유를 지나 환유에 이른다. 수많은 작품 중 필독을 권하고 싶은 작품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권하고 싶은 작품은 깍지, 시검, 황진이, 거짓말, 봄 한 놈, 시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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