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박남규의 '구들목'
[시를 느끼다] 박남규의 '구들목'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11.30 08:3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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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매일에 소개된, 낭송회 후 내빈들과 회원들 기념촬영
시니어매일에 소개된, 낭송회 후 내빈들과 회원들 기념촬영

 

 

구들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구들목 [2021년 도서출판 남신]

지리산문학관에서 낭송회 후 기념사진
지리산문학관에서 낭송회 후 기념사진

 

박남규 시인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어릴 때는 그 시절 모두가 그러하듯이 가난과 힘겨루기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쌓은 경험의 다양성이 그의 詩에 모태가 되고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믿음으로 다져진 신앙심은 그의 삶에 모토가 되고 근간이 된 듯싶다.

60대 중반에 시인에게 닥쳐온 시련은 너무나 참혹했다. 일명 백혈병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앞에 남은 6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결론은 남은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감사하면서 남을 위한 봉사로 생을 마감하려고 무료급식소에서 밥 푸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봉사의 나날을 보내는 중 뜻밖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나이가 많아 골수이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데도 적극적으로 골수이식을 권유하는 좋은 의사선생을 만났고 마침 딱 맞는 골수 공여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 모두가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는 단언했고 지금도 덤으로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그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는지 완치 판정을 받기 전부터 이 땅에 작은 노래의 씨를 열심히 뿌리기 시작했다. 학산문학이란 작고 미약한 씨를 태동하고 발아시킨 것이다. 지난해 열 명으로 시작한 문학회는 올 6월에 시화전과 낭송회를 개최하였다. 지역 주민의 열렬한 성화로 시화전은 한 달간을 전시하여 지역주민의 시심을 자극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가을에는 지리산문학관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작지만 조촐한 낭송회를 열고 계속 교류를 가지기로 약속도 하였다. 학산문학회의 발전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하리만큼 이 땅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학회가 되리라 믿는다.

구들목이라는 詩는 제목부터 반세기전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그때는 정말 그랬다. 방 윗목은 외풍이 심하면 얼음이 얼지라도 아랫목은 지글지글 끓다 못해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 구들목에는 늦게 귀가하는 식구들의 밥도 가족들의 情만큼이나 따뜻하게 보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검은 광목이불은 아주 커서 방안을 가득 채웠다. 거실이자 식당이고 침실이었던 그 방에는 겨울이면 언제나 밥 먹을 때 외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윗목에는 검정보자기를 쓴 콩나물시루가 있었고 시냇물 소리를 내면서 콩나물은 자랐고 그 콩나물이 식구들의 요긴한 반찬꺼리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그때 그 모습들이 활동사진마냥 눈으로 보듯이 그려지는 詩는 요즘에 와서는 흔치 않기에 더 눈이 가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詩는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디어 한국의 정서에 목마른 이국의 동포들에게까지 전해져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안다. 덤으로 주어진 나머지 삶에 강한 애착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박남규 시인에게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가호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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