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시를 느끼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3.01.30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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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해서 그리움을 버리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2004 민예원]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서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에 문학예술에 ‘갈대’ ‘낮달’ 등으로 추천되어 등단했지만 등단 뒤 일정한 직업 없이 궂은일을 하며 광산을 떠돌아 다녔다. 그래서 10년간 침묵하다 1965년 첫 시집 '농무'를 출간하면서 농민들이나 하층계급의 고달픈 삶을 주로 다루었다. 2001년부터 화해와전진포럼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수상경력은 1회 만해문학상 수상,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아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詩는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많이 등장하는 詩라고한다. 그것은 이 詩가 설의법, 도치법, 반복법 등 문법적인 요소가 많아 학생들이 詩를 배우면서 문법까지 익히게 되니 일거양득이라 그런가 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詩를 감성적으로 접근해 공감하면서 즐겨 보았으면 한다.

가난하다고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시작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버렸겠는가, 등으로 계속 답을 요구하지 않는 의문으로 시종일관 펼쳐나가고 있다.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니까 기죽지 말고 힘내라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쏟아지는 달빛이란 詩語는 얼마나 차고 시리고 외로운가. 그러니까 그 시대 젊은이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방범대원의 호각소리와 메밀묵 사려 소리는 반세기전 우리의 밤풍경이 아니던가. 그 뒤 이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집, 감나무와 까치밥도 떠오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롭고 힘들 때 어머니와 고향이 떠오른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사랑도 알았고 뜨겁게 사랑했지만 또 가난 때문에 터지는 울음을 삼키면서 헤어져야 했다. 가난 때문에 그 모든 걸 버려야 했던 그 시대의 비애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아주 좋은 시다.

우리는 지금, 절대적인 가난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남과 비교하기에 생기는 상대적 결핍과 가난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요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단어를 한 개만 바꿔보면 어떨까.

시인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각자에게 맞게 가난이란 단어만 한번 바꾸어 보자. 예를 들어 가난 대신에 공부 못한다고,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못 배웠다고, 말 못한다고,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두려움이 없겠는가,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하는 식으로 바꾸어도 좋은 詩가 될 것 같다.

이렇게 자기에게 맞게 활용해 보는 것도 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한 때로는 적당한 패러디는 원작을 더 돋보이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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