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꿈에도 가고 싶었던 천왕봉을 오르다
[우리 산하] 꿈에도 가고 싶었던 천왕봉을 오르다
  • 이승호 기자
  • 승인 2020.10.1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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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종점이자,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천왕봉 등산 기(記)

 

남한에서 2번째 높은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 단풍이 들다. 이승호 기자
남한에서 2번째 높은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 단풍이 들다. 이승호 기자

천왕봉이 보이는 지리산 주위에는 수십 번 갔지만,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생애에 한 번 올라가 볼 수 있을까? 천왕봉을 올라가 보는 것이 꿈이자 나의 희망이었다. 워낙 높은 산이라 등산길이 험하고 오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겁도 나고 체력이 받쳐줄지 걱정도 되었다. 망설임 끝에 추석 명절 제사를 지낸 이튿날 용기를 내어 지리산 천왕봉을 찾았다.

지리산(知異山)은 우리나라 최초로 1967년에 지정된 국립공원 제1호이다. 동서 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약 320㎞이다. 방장산(方丈山)·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부르며, 금강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들 3산을 삼신산(三神山)·삼선산(三仙山)이라고도 한다. 남한에서 한라산 백록담(1,950m)에 이어 천왕봉(1,915m)은 2번째로 높은 산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왕봉 정상에는 많은 등산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기다린다. 이승호 기자
천왕봉 정상에는 많은 등산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승호 기자

행정구역은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군, 15개 읍·면에 걸쳐 있다. 둘레는 약 800리, 산 능선은 1,000m 이상의 고봉들로 동쪽 써리봉(1,602m)부터→중봉(1,874m)→천왕봉(1,915m)→제석봉(1,808m)→연화봉(1,730m)→촛대봉(1,703m)→영신봉(1,651m)→칠선봉(1,558m)→덕평봉(1,521m)→벽소령(1,350m)→형제봉(1,452m)→명성봉(1,586m)→토끼봉(1,534m)→삼도봉(1,176m)→반야봉(1,732m)→중봉(1,742m)→노루목(1,488m)→임걸령(1,320m)→돼지령(1,370m)→노고단(1,507m)→성삼재(1.102m)→고리봉(1,248m)→만복대(1,433m)→고리봉(1,304m)→세걸산(1,207m)→바래봉(1,165m)→덕두산(1,149m)까지 이어진 길이 약 110리(약 48km)이다. 국립공원 면적은 440.517㎢(1억3천 평)이다. 이는 한라산국립공원의 3배이고, 여의도 면적의 약 52배 정도로 22개의 국립공원 중 가장 넓다.

급경사의 철계단을 오르면 정상 천왕봉이다.기어서 올랐다. 이승호 가자
급경사의 철계단을 오르면 정상 천왕봉이다.기어서 올랐다. 이승호 가자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만큼, 피아골, 뱀사골, 칠선계곡, 한신계곡의 4대 계곡과 원시림과 기암괴석과 폭포가 어우러져 절경의 경관을 보여 주는 계곡이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불교 유산의 산실인 사찰은 쌍계사, 화엄사, 연곡사, 실상사, 칠불사, 천은사, 대원사, 내원사 등이 있다. 이 산 동쪽에는 남강이, 서쪽에는 섬진강이 흐르며 덕천강, 엄천, 화개천, 연곡천 등 많은 하천의 근원이다. 이렇듯 많은 것을 아울러 품은 풍요롭고 넓고 높은 산이기에 모성(母性)의 산이라 부르는 것 같다.

고사목이 즐비한 제석봉 정상은 출입이 통제되어 았다. 아승호 기자
고사목이 즐비한 제석봉 정상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이승호 기자

등산코스는 천왕봉(天王峰) 오르는 가장 짧은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경남환경교육원에서 법계사 방향으로 갈 수도 있으나 버스가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이다. 새벽 6시 어둑어둑하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200m의 포장된 도로를 오르면 우측 셔틀버스 길과 좌측 통천길이라는 등산로 입구가 보이는 갈림길이다.

통천길을 약 1.1km 오르면 보는 각도에 따라 칼처럼 보이지 않고 피라미드를 옆으로 밀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칼바위를 지나면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에는 조그마한 출렁다리도 있다. 우측 로타리대피소 방향으로 오른다. 지금까지는 힘들지 않은 평탄한 길이다. 등산객은 간간이 보이고 날은 밝아진다. 여기서부터 약 2km 로타리대피소까지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간간이 빨간 단풍도 눈에 띄고 지리산 동쪽 산자락도 보이지만 즐길 여유가 없다. 힘겹게 3시간 만에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했다.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등산객이 넓지 않은 대피소에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다. 어찌 된 영문일까? 알고보니 셔틀버스를 타고온 사람들이다. 여기가 합류되는 곳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출발했다. 곧이어 법계사이다. 일주문에서 법당이 보이나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통과했다. 이 절에 계신 스님은 체력이 무척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산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쉬고 또 쉬고, 가고 또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지금까지 왔는데 약 1km 남았다는 이정표에 힘을 얻어 또 오른다. 많은 등산객들은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 듯하다. '태산이 높다 하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지만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한 봉래 양사언의 시구도 읊어 본다. 정상 코 앞에는 70~80도는 족히 되어보이는 철계단이다. 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하여 출발한지 5시간 30분만에 천왕봉에 올랐다.

모든 기가 더 모여았다는 천왕봉에서 어려운 시기이지만 용기를 잃지 마시라고 외쳐본다. 아승호 기자
모든 기가 다 모여있다는 천왕봉에서 어려운 시기이지만 용기를 잃지 마시라고 외쳐본다. 이승호 기자

바람도 불지 않고 날씨는 쾌청하다. 바래봉에서 제석봉까지 지리산 110리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골골이 골짜기 마을도 보인다. 사람이 서서 110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을까. 장엄하고 시원하다. 이런 맛에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천하를 손아귀에 잡은 듯 통쾌하고 후련하다. 올랐다는 성취감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정상석에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다. 연휴에 모든 등산객이 여기에 온 듯 수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의 주요 산의 정기를 모두 모아 백두대간의 최종 종점인 천왕봉에 좋은 기운이 다 모여있다고 한다. 사진도 찍고 마음 모아 기원도 해본다.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곳이란 생각에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집에 가는 길이 부담이 되어 서둘러 하산했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의 통천문을 지나 고사목이 즐비한 나무의 공동묘지로 일컬는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까지 1.7km 구간은 내리막이라 힘들지 않다. 내려오는 등산길 내내 우측으로 지리산 연봉을 감상할 수 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유암폭포를 지나 출발지점인 중산리탐방지원센터까지 5.3km 구간은 힘들지 않은 내리막길이지만 지친 체력으로 너무 길고 길다고 생각되었다. 선행거리 총 12.4km를 출발한지 11시간 30분만에 파김치가 되어 도착했다. 다시는 지리산을 찾지 않으리라. 하지만 어떤 높은 산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tip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주차료 승용차 1일 5천원이다.(밤 12시 기준)

•셔틀버스 편도 성인 2천원, 아침 7시 첫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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