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⑯ 잡초와 제초제의 전쟁
[꽃 피어날 추억] ⑯ 잡초와 제초제의 전쟁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7.05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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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서 피를 뽑고 모내기 후, 호미로 논을 매다가 제초기가 논을 맸다.
1970년대 초반 제초제 '탁크' 사용을 시작으로 초기, 중기, 비선택성 제초제가
개발되어 힘들게 논을 매는 잡초와 전쟁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제초제를 체계처리하여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한 논. 유병길 기자
5월 25일 모내기를 한 벼. 제초제를 체계처리하여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한 논.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물못자리, 밭못자리, 모심은 논에 나는 잡초를 뽑는 것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하였다. 모을 심은 후 넓은 논에서 풀을 매려면 힘이 들고 품삯도 많이 들기 때문에 노동력과 품삯을 줄이기 위하여 모판에서 두세 번 철저하게 피를 뽑았다.

봉강리에서 손 모내기를 처음 시작하여 끝이 나려면 한 달 정도 걸렸다. 제때 하늘에서 비가 내려주면 일찍 끝이 났지만, 가뭄이 계속될 때는 오래 걸렸다. 일찍 모를 심은 논은 논을 매는 시기를 놓쳐서 피가 많이 나는 일도 있었다. 초벌 논매기는 모낸 후 15~20일경에, 두벌 논매기는 초벌 후 10~15일경에 품앗이로 하였다. 부잣집은 15~20여 명이 보통 농가는 5~10명이 옆으로 늘어서서 앞으로 나가며 호미로 풀을 뽑았다. 두벌 논매기 때는 벼잎에 눈이 찔리는 사고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놀이할 때 쓰는 수경을 쓰기도 하였다. 호미로 논을 매면서 북을 치면서 “우 후후”  선창을 하면 모두가 “우 후후” 흥겹게 소리치던 소리가 지금도 은은히 들리는 것 같다.

호미로 논매기를 할 때의 사진이다. 유병길 기자
호미로 논매기를 할 때의 사진이다. 유병길 기자

논매기 노래로 즐겨 부르든 상주 민요인 ‘공갈 못의 노래’다

“상-주 함-창 공갈- 못 -에 연밥-- 따-는 저 처-녀 야, 연밥--줄-밥- 내 따-줄--께 이내--품-에 잠자-주 소, 잠 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 요”

배가 고픈 아이들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논매려고 간 집 앞에 서성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머리에 이고 가는 점심밥 광주리를 따라나섰다. 그때 얻어먹는 밥 한 그릇, 노릇노릇 구운 고등어 한 토막을 받으면 뼈 채로 씹어 먹었던 그 맛, 정말 행복했었다. 집 집마다 논매기하는 날은 고등어를 사다가 구워서 주는 일이 관례같이 되었다.

점심 먹을 때 막걸리 몇 잔, 오후 참으로 몇 잔을 마시고 나면 술 취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며 그냥 따라가는 일꾼들도 있었다.

점심 광주리를 이고 들판에 가고 있다. 유병길 기자
점심 광주리를 이고 논을 매는 들에 가고 있다. 유병길 기자

60년대 줄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논을 매는 기계가 보급되었다. 놀 골에 기계를 놓고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죽~죽~ 밀고 나가면, 바람개비 같은 쇠바퀴가 흙을 파면서 풀까지 뽑아 주었다. 호미로 풀을 뽑을 때보다는 허리도 아프지 않고 쉬웠다. 벼 포기 옆의 피는 뽑을 수가 없었다. 벼 이삭이 팰 때 피가 많은 논은 다래끼를 매고 논에 다니면서 피 이삭을 뽑아야 했다.

벼와 벼 사이 놀골에 놓고 앞으로 밀면서 논매기를 하였다. 유병길 기자
벼와 벼 사이 놀골에 놓고 앞으로 밀면서 논매기를 하던 제초기다. 유병길 기자

60년대 후반에 논 제초제 ‘탁크’(광고지: 풀매기여 안녕!)가 샌산되어 70년대 초에 사용하게 되었다. 300평에 3kg짜리 한 봉을 뿌려 효과가 있을까 믿지 않았다. 상주 농고를 졸업하고 많은 농사를 짓고 있던 정준광 씨가 봉강리에서 처음 2봉을 600평에 뿌렸다. 처음 논에 뿌리니 부서진 국수가 물속에 떨어진 것 같이 희게 보였다. 하루가 지나자 녹아서 없어졌다. 논물이 서서히 줄어들면 논바닥 표면에 제초제막이 생긴단다. 피 등 잡초가 막을 뚫고 올라와도 광합성 작용을 못하여 죽는단다. 피 등 일년생 잡초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올방개 가래 등 여러해살이 잡초는 효과가 없고, 논물이 잘 빠지는 모래 논에도 효과가 없었다. 피에 효과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부터 ‘탁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품절된 상품.)

후반에는 논밭 겸용인 마세트 입제, 유제가 공급되면서 제초제에 의한 잡초 방제가 시작되었다. 몇 년 후 다년생 잡초를 죽이는 중기 제초제, 모든 식물을 전멸시킬 수 있는 비선택성 제초제까지 공급되었다. 못자리에, 모심은 논에는 전용 제초제를, 논두렁에는 비선택성 제초제(모든 잡초 농작물을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 노동력을 절감하고 잡초 방제에 큰 효과가 있었다. 경운기, 트랙터 등 농기계회사의 성장에 이어 살충 살균제, 제초제를 생산하는 농약 회사도 성장하면서 노동력이 줄어든 쉬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요즘은 초기 제초제(일년생 잡초를 죽이는 약)를 트랙터로 써레질할 때 뿌린다. 모를 심고 15~20일 후에 중기 제초제(다년생 잡초를 죽이는 약)를 뿌리는 체계처리를 한다. 잡초의 종류에 알맞은 제초제 선택이 방제 효과 높이는데 중요하다. 손으로 논매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간혹 제초제를 뿌리는 시기를 놓쳐 잡초가 많이 났을 때는 2.4-D를 모래에 묻혀 이삭패기 35~45일 전까지 뿌려서 방제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어 효과가 좋은 제초제도 잘못 사용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사례도 많았다. 비선택성 제초제인 그라목손을 뿌린 분무기를 씻지 않고 묘판에 살충제 뿌렸는데 남은 제초제가 묘를 죽었다. 비선택성 제초제를 전착제(농약이 작물에 잘 붙어 효과를 발휘하도록 살포액에 썩어서 쓰는 약제)로 오인하여 물 한 말당 조금씩 넣어 한창 이삭이 패는 시기에 목도열병 약을 뿌리다 벼를 다 죽이는 피해가 있었다. 제초제는 잡초를 죽이는 효과가 있는 만큼 벼도 7~10여 일 자라지 못하는 몸살을 겪는다. 적기에 풀의 종류에 맞는 적정 제초제를 사용하여 쉬운 농사를 짓도록 하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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