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⑥ 뽕 따러 가세
[꽃 피어날 추억] ⑥ 뽕 따러 가세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4.27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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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밭을 조성하고 뽕잎을 먹여 누에 키우고 고치를 생산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 직조기에서 명주를 짰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있다. 상주 박물관의 사진. 유병길 기자
누에가 뽕잎을 먹고 있다. 상주 박물관의 사진. 유병길 기자

 

누에고치와 명주를 생산하려면 뽕잎 있어야 한다.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뽕나무(천연기념물 제559호)는 수령 400년 이상 되어 옛날부터 누에를 치고 명주를 생산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때 뽕나무는 밭이나 밭둑에 있는 수십 년 수백 년 된 재래종 뽕나무였다.

‘새마’마을 앞 밭에 백 년이 넘은 뽕나무가 있었는데, 새 보가 설치되어 밭이 논으로 변하면서 벼 논에 뽕나무가 서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뽕나무가 무논에서 살아갈 수 없어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때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뽕잎을 따르면 힘도 들고 뽕의 수량도 적어서 많은 노동력이 들었다. 1년에 두 번, 봄누에는 5월 중순 가을누에는 8월 중순에 쳤는데, 비가 자주 와서 비를 맞고 뽕을 따기가 힘이 들었고, 물 묻은 뽕을 주면 누에가 병에 걸리기 때문에 마른 수건으로 닦아서 주었다. '뽕따려 가세 뽕따려 가세/  뽕도 따고 임도 보고....' 등 노래를 중얼거렸다.

 

요즘 상주지역의 밭둑 집주변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뽕나무가 잎을 피우고 있다.유병길 기자
요즘 상주지역의 밭둑 집주변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뽕나무가 잎을 피우고 있다.유병길 기자

 

면에서 받은 누에씨에서 까만 어린 누에가 깨어나기 시작하면, 작은 상자나 채 속에 종이를 깔고 누에씨 판을 넣었다. 까만 누에가 다 깨어나면 꿩이나 닭의 깃털로 털어서 뽕잎의 어린 새순을 작게 썰어서 주었다.

작게 썰어도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뽕잎을 갉아 먹는데, 첫잠을 자고 나면 2령으로 눈에 띄게 커졌다. 누에가 잠을 잘 때는 뽕잎을 먹지 않고 허물을 벗으며 크게 된다. 두 잠을 자고 나면 3령, 석 잠을 자면 4령 넉 잠을 자면 5령이다.

방 안 양쪽에 삼 단짜리 사다리를 세우고, 한 단마다 긴 서까래 2개를 양쪽 사다리에 걸치고 그 위에 누에 채반을 놓거나 발을 펴고 발 위에 밀가루 포대 종이를 깔고 누에를 놓았다. 잠을 자고 똥 가리기를 할 때마다 누에도 크기 때문에 자리를 넓혀주어야 했다.

뽕을 썰어서 누에 위에 뿌릴 때는 안 보이지만, 조금 있으면 뽕잎을 다 먹고 누에만 남았다. 뽕은 하루에 4~5회 주었다. 넉 잠을 자고 5령이 되면 개미보다 작았던 누에는 어른 손가락만큼 커서 무게가 10,000배나 늘어나 징그러웠다. 전용 잠실이 없던 이때는 큰방 작은방 건너방 등 모든 방은 누에가 차지하였다. 뽕잎을 썰지 않고 그대로 주었는데, 한참 갉아 먹을 때는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이 시끄럽고 똥도 많이 누어서 매일 똥 가리기를 했다. 이때가 누에 치는 동안 제일 바쁜 시기였다.

5령 7~8일이 지나면 누에머리와 몸이 투명해지며 뽕을 먹지 않고 집을 지으려고 머리를 흔들게 된다. 마지막 똥 가리기를 하고, 누에 발 위에는 밀가루 포대 종이를 깔고 누에고치를 지을 섶(말린 솔가지, 참나무 가지)을 올려주었다. 누에는 가지를 타고 올라 좋은 자리를 잡아 입에서 실을 토해내며 밖을 둘러쳤다. 처음에는 누에가 머리를 돌리면서 실을 토해내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조금 지나면 고치 속의 누에를 볼 수 없다. 그 안에서 계속하여 실을 내며 누에고치를 만들었다. 이때 방 안의 온도와 습도는 품질 좋은 누에고치 생산을 좌우하였다.

5~6일 동안 실을 다 토해낸 누에가 번데기로 변하면 흰 고치를 따고, 물레에 가락을 끼워 돌리면서 누에고치를 깨끗하게 손질하여 공판장에서 수매를 하였다.

집에서 명주를 짜는 농가에서는 누에고치를 수매하지 않았다. 그냥 보관하면 번데기가 나방으로 변화하여 구멍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큰 솥에 쪄서 말려 보관 하였다. 명주를 짜기 위해서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야 했다. 부엌 뒤뜰에 작은 솥을 걸고 물을 붓고 솔가지로 불을 때어 누에고치를 삶으면서 물레를 돌려 명주실을 뽑아 가락에 감으면 모든 고치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번데기 얻어먹는 재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손자들이

“할머니 명주실이 몇 발 감기면 번데기 나와요?”

“명주실이 우리 집을 몇 바퀴 돌아야 나올 거야.”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기다리다가 실이 다 풀린 누에고치 속에서 노랑 번데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야” “야” 소리치며 손을 내밀었고, 맛있는 번데기를 먹을 때는 정말 행복하였다. 명주실을 다 뽑으면 직조기(명주를 짜는 베틀)로 명주를 짜서 주로 시장에 판매하였다.

“한복에 명주 옷고름만 달아도 사돈 팔촌까지 따뜻하다.” 말이 있듯이 명주옷(비단옷)은 그만큼 따뜻하였다.

개량 뽕밭 봄누에를 칠때 가지가 잘리고 다시 새순이 돋고있다. 유병길 기자
개량 뽕밭. 봄누에를 칠때 가지가 잘리고 다시 새순이 돋고있다. 유병길 기자

 

잠업증산을 위하여 1960년대 잠업 지도원이 읍•면에 배치되면서, 뽕밭과 누에 치는 기구를 개량하여 예전보다 획기적인 수량을 올렸다.

밭에 있는 재래종 뽕나무를 캐내고, 노상, 개량 서반 등 신품종 뽕나무를 심었다. 물이 부족한 논은 밭으로 전환하여 줄을 맞추어 뽕나무를 심어 개량 뽕밭을 만들었다. 보통 농가는 누에를 1~2장을 쳤으나, 기말기 이영우 씨는 대농가로 15장 정도 쳤다. 집 집마다 잠실을 개량하거나 새로 신축하였다. 잠실이 부족하면 방은 누에한테 주고 주인은 마루에서 잠을 잤다.

봄누에 때는 전정 가위로 가지 밑을 잘라 뽕잎을 따서 주었는데, 마지막 잠을 자고 누에가 클 때는 누에 위에 가지뽕을 그대로 채반 위에 걸쳐주었다. 뽕잎을 다 먹으면 누에 위에 그물을 덮고 가지뽕을 올려 누에가 위로 올라오면 그물을 들고 밑의 가지와 똥을 가려냈다.

가을누에 칠 때는 새로 나온 가지의 잎을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잎자루를 하나하나 따서 먹였다. 봄에는 또 가지를 자르며 매년 작업을 반복하면 뽕나무 밑둥치는 두세 개의 주먹이 달린 것 같았다. 개량 뽕밭은 뽕 따려 나무에 올라가는 일이 없어 노동력도 절감되고, 오디도 안 달려 뽕잎 수량도 많았다. 오디를 사고 씻고 씨를 묘상에 파종하여 일 년을 키워 신품종 뽕나무를 접목하였다. 묘목을 키워서 판매하는 농가는 돈을 벌었다.

뽕나무에 달리는 오디(뽕나무 씨)
뽕나무에 달리는 오디의 낟알 낟알은 뽕나무 씨다. 유병길 기자

 

누에 올리는 섶도 솔가지 대신 볏짚을 30cm 정도 잘라 새끼에 끼워 만든 짚 섶을 사용하다가, 개량섶이 보급되면서 고치의 품질 향상을 위하여 모두 개량섶을 사용하였다.

누에고치, 명주실, 명주 표본. 상주 박물관 보관. 유병길 기자
명주, 명주실, 누에고치. 상주 박물관의 표본. 유병길 기자

 

1960~70년대 상주지역에 누에고치 수매 자금으로 농가에 떨어지는 돈은 엄청나게 많았다. 봄과 가을에 면 소재지에서 누에고치 수매가 시작되면 식당과 아가씨가 있는 술집은 만원이었고, 다방에도 아가씨 숫자를 배로 늘려 어수룩한 농업인의 돈을 훑어갔다. 

70년도 초반부터 누에고치 수매가격이 떨어지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개량 뽕밭의 뽕나무를 케어 내고 통일벼를 재배하면서 누에를 치는 농가가 없어졌다. 

상주시 함창읍에 있는 '잠사곤충사업장'에는 유리온실, 누에 체험 학습관, 나비 생태원,  곤충 생태 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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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2021-04-28 22:49:50
어릴때 누애치던 옛추억이 물씬 묻어나고
정겨운 시골 풍경이 생각나는 구수한
글 즐겁게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