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⑦ '옻순'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일들
[꽃 피어날 추억] ⑦ '옻순'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일들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5.03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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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질환에 좋다고하여, 아무나 덥석대고 '옻순' 먹었다간 큰코다친다.
먼저 나온 옻 순은 꺽이고  새로 나온 옻 순. 유병길 기자
옻나무의 옻순을 꺾어 살짝 삶아서 된장, 초장에 묻혀 먹는다. 유병길 기자

 

197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 사는 친구 3명의 이야기다. 70년 5월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냇가에서 땀을 흘리며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친구 균(27세) 씨, 수(26) 씨, 갑(26) 씨가 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우산 재(요즘은 터널이 뚫렸다)를 올라와서 타고 내려왔다. 외서면 소재지 가곡리에 도착하니 목이 말라 막걸리 생각이 났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눈빛으로 초등학교 옆 식당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힐끔 보며 인사를 하며 큰 그릇에서 삶은 두릅 같은 파란 새순을 된장에 버무리는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막걸리 한주전자를 주문하였다. 방안 손님들이 가져와서 삶은 옻순이라며 옻 순을 쟁반에 가득 담아 주었다. 옻이 오르는 사람은 먹지 말라 하였다. 위장에 좋다고 옻닭을  먹는 것은 보았으나, 순을 삶아 먹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막걸리를 술잔에 가득가득 부어 들고 건배를 외치며 한잔 쭉 들이켰다. 옻이 오르는 것을 모르면서 수저로 옷 순을 집어서 입에 넣으니 상큼한 향과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젓가락을 자주 가게 하였다. 세 친구가 처음 먹어보는 옻 순이 두릅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속으로 옻오르면 어쩌지? 걱정 하며 같이 술잔을 들고 부디 치고 마셨다. 옻이 오른다는 생각 안 하고 젊은 혈기에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다 먹어갈 때 인근 동네 친구 어른이 들어오셨다. 아주머니한테 술과 옻 순을 가르키며 같이 달라고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갑 씨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어릴 때 할머니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몸이 허약하여 병을 달고 살았다. 어느 겨울날 해가 뜨기도 전에 할머니가 깨워 재 씨 집 옻나무 울타리로 갔는데 추었다. 동쪽 산 위로 붉은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른 손가락 정도 굵은 옻나무 가지를 꺾어 붉은 해를 보며 세 번 허리를 굽혀 절을 하셨다. 웃옷을 올리고, 명치 위의 가슴에 꾹 찌르셨다. 너무 추워서 아픈 줄도 모르고 얼른 옷을 내리고 집에 왔다. 저녁때 할머니가 웃옷을 올리고 가슴을 보며 너는 옻은 안 오르겠다는 말을 하셨다. 옻나무에 찔릴 때 피가 났는가? 붉은 딱지 몇 개가 보였다. 그때 왜 옻나무 가지로 가슴을 찔렸는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때 묻지를 못하여 지금도 궁금하였다. 낮에 두 친구도 만났지만 아무렇지 않아 옻은 오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5일 후 갑 씨가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사무실 앞에 옻 순을 같이 먹든 친구 어른이 리어카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에 내려 인사를 하니 맛있게 먹은 옻 순 때문에 옻이 올라 3일째 약방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셨다. 얼굴은 옻오른 표가 나지 않았다. 그때 손가락으로 아랫도리를 가르쳤다. 양 손가락을 벌려 공을 잡은 것 같은 시늉을 하며 소 뭐만큼 커져서 못 걷는다고 하였다. 부인과 딸도 옻이 올랐단다. 그때 친구가 어머니를 부축하고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낮고 다급한 소리로 옻 순 같이 먹었다 말하지 말게, 나무하다가 옻오른 줄 안다네.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친구 모친한테 인사를 하였다. 친구도 아버지가 나무하시다 옻나무를 건드려 옻이 오른것으로 알고있었다.

옻이 오르는 사람은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옻나무 가지가 들어가면 열기에 옻이 오르고,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옻닭, 옻 순을 먹은 사람이나 옻오른 사람의 변에서 올라오는 김만 쐬어도 옻이 오른다는 말이 있었다.

옻나무는 순이 꺾이고 줄기가 잘리는 수난을 겪고 있다. 유병길 기자
옻나무는 순이 꺾이고 줄기가 잘리는 수난을 겪고 있다. 유병길 기자

 

봄에는 새순이 꺾이고 가을과 겨울에는 옻닭을 한다고 가지가 잘리고, 인적이 드문 밭둑에 있는 옻나무는  뿌리까지 캐가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균 씨는 결혼하여 고향에 정착하였다. 80년대 마을 후배들과 보다 잘 사는 농촌을 위하여 선진지 견학을 여러곳 다니며 신기술을 배웠다. 대나무 비닐하우스를 지어 오이재배를 하다가 쇠 파이프 하우스를 짓고 온풍기를 달고 오이재배로 소득을 올렸다. 비닐하우스가 늘어나 오이, 가지, 채소 농사로 소득을 올렸다. 92년 과수 불모지인 이곳에 배 과수원을 여러명이 조성하고, 양봉을 하면서 소득을 올리는 선도 농가가 되었다.

갑 씨도 회사에 취직되어 여러 지점을 이동하다 1980년대 중반 대구에 살게되었는데 위궤양으로 고생을 하였다. 옻닭이 좋다고 매제가 말린 옻나무 속껍질을 한자루 보내주었다. 13평 좁은 아파트에서 닭 속에 옷껍질 한줌을 넣고 삶아 먹었다는데 가족들도 옻이 안올랐다. 혼자 옻닭을 먹다보니 질렸다. 닭을 삶아 고기는 아이들과 같이 먹고 그 물에 닭뼈, 옻을 넣고 삶아 물만 마시게되었다.

수 씨는 결혼하여 서울에 살게 되면서 몇 년 옻순을 먹지 못하였다. 쉬는 날 부인을 따라 재래시장을 갔었다. 부인이 두릅 순을 사는데 옆에 옻순이 있었다.  부인이 외출하였을 때 옻순을 사다가 주방에서 삶았다. 화장실 간 사이에 들어온 부인이 끓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다가 김을 쐬었다. 아무렇지 않고 옷이 오르지 않았다. 옻이 안오른다는 것을 알고 처음 옻 순을 먹어본 부인이 두릅보다 맛있다고, 옻 순 애호가가 되었다. 매년 봄이면 시장에서 옻순부터 산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020년 옻순이 돋아날때 세 친구가 오십 여년만에 그리운 고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도 만날 수가없으니 그저 '옻순 추억'에 취해 비틀거릴 수밖에...오호애재란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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