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⑱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던 신통한 묘약들
[꽃 피어날 추억] ⑱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던 신통한 묘약들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7.2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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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면 골담초 뿌리와 줄기로 술과 단술을, 뱀술을 담아 먹었고, 무릅이 아프면 우슬 뿌리로 술과 단술을 담아 먹었다. 더위를 먹으면 익모초 생즙을 먹었다
골담초 꽃에도 관절에 좋은 효능이 있다고 전을 부치고 밥솥에 넣어 밥을 지어 먹었다. 유병길 기자
골담초 꽃은 전을 부치고 밥솥에 넣어 밥을 지어 먹었다.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뿐만 아니라 읍내에도 의원이 몇 곳밖에 없었다. 대부분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였고 잘 먹지 못하던 때라 병에 걸리면 거의 다 죽었다.

결핵을 앓는 사람이 많았고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전염되어 여러 사람이 아팠다. 나이가 많으신 분, 어린 중•고등학생도 결핵을 앓다가 죽어 갔었다. 겨울이 되면 기침을 많이 하는 천식 환자도 많았다. 천식도 전염이 되는가, 아들딸이 고생하였다. 천식과 감기 기침에는 말려둔 차즈기 잎과 파뿌리, 생강을 넣어 삶아서 마셨다.

여름에는 학질(초학.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었다. 증상은 얼굴이 노랗고 기운이 없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누워 있었다. 약은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쓴 금계랍(키니네)을 먹으면 증세가 좋아졌다.

홍역이 유행하면 1~2세의 어린이가 많이 앓았다. 온몸에 열이 나고 붉은 반점이 생기면 꽃이 피었다 하였다. 말을 잘못하면 부정 탄다고 아이한테 존댓말을 하였다. 천연두(마마)는 얼굴 부위에 열이 나고 발진 되어 잘못되면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 홍역 천연두(마마)를 앓다가 아이들의 절반 가까이 죽었다. 그래서 홍역 천연두를 앓고 일어 나야 부모들은 안심하였다.

장티푸스(장질부사)를 앓는 환자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면 많이 죽었다. 1945년 남편이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할 때 병간호하던 아내도 병에 걸렸다. 남편은 어렵게 완치되었는데 아내는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일도 있었다. 전염병을 역병이라 했다. 

못 먹어 영양분이 부족하여 그랬는가? 무릎, 머리, 팔, 다리에 부스럼, 종기가 많이 생겼다. 곪을 때는 붉게 부어 열도 나고 아팠다. 가장자리가 하얗게 곪으면 환부의 고름을 짜고 고약을 붙였다. 머리에 큰 종기가 생겨 고생을 많이 하였다. 고름을 짜내고 움푹 파인 곳에 고약을 붙였다. 매일 새 고약을 붙이면 붉은 새살이 돋아났다. 다 나아도 그 부분에는 머리털이 나지 않아 반질반질 하였다.

소화가 안 되는 분들도 많았다. 식사 후에는 소다를 한 숟가락씩 계속 먹었다. 소화가 잘된다는 약수터를 찾아 약수물을 마셨다. 나중에는 식사 못 하고 말라서 돌아가셨다. 병원에 가지 않아 위암인지? 몰랐었다. 속이쓰리고 아파서 힘들때는 옻을 삶아 먹거나 옻닭을 많이 먹었다. 옻이 올라서 고생할 때는 옻샘에서 몸을 씻으면 낳기도 하고, 계란 삶은 물을 바르기도 하였다.

젊은 분들이 잠을 자다가 죽는 일이 많았다. 심장마비라는 말은 없었고 그냥 급살로 죽었다고 하였다.

골담초 나무가 자라는 사진. 유병길 기자
골담초 나무가 자라는 사진. 유병길 기자
골담초 꽃으로 부친 전. 유병길 기자
골담초 꽃으로 부친 전. 유병길 기자

허리통증에는 가을에 골담초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캐어 삶은 물로 술을, 여자들은 단술을 담아서 먹었다. 꽃에도 효과가 있다고 봄에 골담초꽃이 피면 꽃을 따서 꽃 전을 부쳐 먹었고, 밥솥에 넣어 비벼서 먹었다. 허리통증(요통)에는 사주(뱀술)가 좋고 효과가 있다고 몇 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마셨다.

우슬이 자라는 사진. 유병길 기자
우슬이 자라는 사진. 유병길 기자

무릎이 아플 때도 가을에 우슬 뿌리를 캐어 말려두었다가 술, 단술을 겨우내내 담가 먹었다. 봄에 올라오는 새순에도 효과가 있다고 뜯어서 삶아 나물로 먹었다.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뼈를 다쳤을 때는 병 입구를 솔잎으로 막은 병을 재래식 화장실에 넣어 병안에 들어간 맑은 물을 마셨다.

아이들이 울다가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경기도 많이 하였다. 경기할 때는 영사를 갈아서 젖에 타서 먹였다. 피부병 옴도 많았다. 온천에 여행 갔다 와서 옴이 올라 가려워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옴 약을 사서 들기름에 약을 넣어 끓여 식었을 때  저녁에 몸에 바르고 헌 옷을 입고 자고 아침에 씻는 치료를 여러번하면 좋아 졌다.

갈라진 벽의 흙을 파서 먹거나 마당의 흙을 파서 먹는 아이들이 많았다. 흙을 먹는 아이들이 배가 아파 고생하였다. 뱃속에 회충이 있으면 흙을 먹는다는 말도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구충제 산토닌을 받아먹고 회충이 다 나오고 배가 아프지 않았다. 어른들은 배가 아프면 '갓'을 넣어둔 집에서 검은 덩어리를 꺼내 약간 떼어 끓인 물에 풀어 마시면 금방 나았다. 이때 집 집마다 아편을 심었고, 잎은 따서 상추처럼 보리밥을 싸서 먹었다. 씨방에 상처를 내어 흰 물을 모으면 검은 아편 덩어리가 되었다. 마약인줄 모르고 아플 때 상비약으로 사용하였다.

친구 갑이가 배가고파 익은 보리이삭을 비벼서 후후 입으로 불어서 먹었다. 이때부터 침을 삼키면 목이 ‘뜨끔’‘뜨끔’하여 보리까락이 목에 걸린 줄 알았단다. 불편하였지만 참고 살았다. 학교에서 분유 배급을 받아 보자기에 담아 왔다. 집에서 숟가락으로 분유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녹여 먹다가 입천장에 분유가 묻었는데 떨어지지 않았다. 때어내려고 용을 쓰다 보니 맛이 이상하여 뱉으니 피 고름이 나왔단다. 겁이 나서 말바탱이 약방에 뛰어가니 편도선이 부어 ‘뜨끔’ 그렸고, 곪아 터져서 이제 다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자라는 익모초와 꽃. 유병길 기자
자라는 익모초와 꽃. 유병길 기자

 

더운 여름에 열심히 일하다 더위를 먹어 고생하는 분들이 많았다. 익모초를 베어 잎과 줄기를 방망이로 두드려 삼베 보자기로 짠 생즙을 사발에 담아 밤에 장독대 위에 두었다. 식전에 한 사발 마시면 더위가 나았다. 많이 쓰지만 토하려 하여도 넘어오지 않는다. 익모초는 부인병에 좋다고 꽃이 필 때 베어 말렸다가 겨울에 삶고 조려서 환을 만들어 먹었다. 아기를 낳은 산모의 붓기가빠지지 않을 때는 늙은 호박을 삶아서 먹었다. 아기을 낳은 산모의 보양으로 가물치를 시장에서 사거나 직접 잡아서 삶아 주었다.

신경통이나 담이 걸릴 때는 지네를 잡거나 사서 불에 태워 고운 가루를 만들어 술에 타서 마시면 효과가 있었다. 어지러움(빈혈)에는 소 지라가 좋다고 잘게 썰어서 참기름 묻혀 먹었다.

소먹이 풀을 뜯다가 낫에 손을 많이 베여 피가 날 때, 쑥 잎을 찧어 벤 곳에 부처 피를 멈추게 하였다. 쑥 잎이 없는 겨울에는 된장을 상처 부위에 발랐다. 밥을 얻어먹으려고 식사 때 찾아오는 나병환자, 정신이상 환자들도 많았다.

이부자리와 옷에는 피를 빨아먹는 이, 빈대, 벼룩이 많았다. 1960년대 육군에서 복무할 때 이가 많아 내무반에서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DDT 가루를 넣어 내복 겨드랑 부위에 달고 생활하였다. 요즘 같았으면 야단이 났을 것이다. 

50~60여년 동안 의료 기술의 발달과 예방 접종으로 사라진 질병이 있는가 하면 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여 전 세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 가고있다. 코로나19는 약제를 개발 예방접종을 하고 있으나, 인류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신종변이로 발전하고 있다. 질병을 뒤 따라가야하는 의술의 발전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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