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⑮ 냇가 물고기 잡던 시절의 추억들
[꽃 피어날 추억] ⑮ 냇가 물고기 잡던 시절의 추억들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6.23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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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발로 잡고 웅덩에 물을 퍼서 잡기도 하고, 제피나무 잎으로도 배터리로도 물고기를 잡았다
농약이 판매되면서 냇물에 농약을 풀어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일도 있었다
아련한 추억이 오늘따라 오롯이 떠오른다
제피나무 잎과 껍질을 솥에 뽁아서 자루에 넣에 물속에 휘저으면 붉은 물이 울어나면 보이지 않는 메기 뱀장어 등이 뛰처 나왔다. 유병길 기자
제피나무 잎과 줄기의 껍질을 솥에 볶아서 자루에 넣고 물 속에 넣어 붉은 물이 우러나면 보이지 않는 메기 뱀장어 등이 놀라 뛰처 나왔다. 유병길 기자

1950년 ~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때 싸리나무로 발을 엮어 둥글게 만든 통발이나 채(얼기미)로 도랑이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양식으로 먹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2~ 3명이 한 조가 되어 통발을 물도랑 풀숲에 대고 발로 밟고 신속하게 통발을 들어서 잡았다. 둑에 통발을 털어놓으면 은빛으로 펄떡이는 붕어나 피리, 노란 미꾸라지들, 손으로 잡아서 종다래끼에 담는 쾌감 또한 멋이 있었다. 한나절 잡은 고기는 나누어서 집에 가져갔다.

싸리나무로 발을 엮어 나무가지를 둥글게 만들어 씌워서 통발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유병길 기자
통발. 싸리나무로 발을 엮어 나무가지를 둥글게 만들어 씌워서 만들었고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였다. 유병길 기자

아이들은 채(얼기미)를 들고 도랑에 나가서 고기를 잡았다.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때는 검정 고무신에 담았고, 고기 담을 그릇이 없을 때는 수양버들 가지를 잘라 잡은 물고기 아가미를 끼워서 다녔다.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  유병길 기자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 유병길 기자

장마철 비가 많이 올 때 물에 잠긴 논에는 큰 고기가 올라왔다. 비가 그치고 논물이 빠질 때 물고 밑에 발을 펴놓고 기다리면, 물고기도 내려가다 발 위에 떨어져 은빛 비늘을 번쩍일 때 환호성이 터졌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좋아하였으나 비린 맛 때문에 먹지는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첫서리가 내리고 논물이 차가워지면 논바닥에 살던 미꾸라지가 논바닥 속으로 파고들거나, 샘이나 웅덩이가 있는 논은 그곳으로 모여 겨울을 넘겼다. 이때 고기를 잡으려고 친구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바가지나 양동이로 샘물을 퍼냈다. 돌 사이에 숨어있던 미꾸라지가 물이 없으니 밖으로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의 진흙 속에 손을 넣으면 금빛 미꾸라지들이 가득하였다. 이때 잡은 미꾸라지는 굵기도 굵고 영양분이 많아 맛있는 추어탕의 원료가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서로 먼저 고기를 잡으려고 웅덩이 물을 푸는 경쟁을 하였다.

1950년대 후반 많은 비가 내려서 ’새마‘ 앞 냇가 제방이 무너지고 논과 벼가 떠내려가는 큰 피해로 도로까지 냇가가 되었다. 깊이 파인 곳에 물이 고였고 고기도 많았는데 겨울 가뭄으로 물이 말랐다. 친구 갑이 할아버지가 말바탱이 밭에 거름을 뿌리려고 그 옆을 지나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단다. 거름을 보리밭에 뿌리고 와서 얼음을 깨고 보니 물이 없어 물고기들이 뛰었단다. 갑이를 데리고 가서 얼음을 깨고 항아리 가득 물고기를 잡았다고 물고기를 얻었다.

논에 냇물을 넣기 위하여 큰 나무를 베어다가 제방과 45도 정도 되게 놓고 밑에는 큰 기둥을 박고 묶어 고정하였다. 위쪽에는 나뭇가지를 많이 걸쳐놓고 큰 돌과 자갈을 퍼 올려 물을 막는 보를 만들었다. 장마 때 많은 물이 내려가면 보를 넘은 물의 힘에 밑이 깊게 파여 물이 고였다. 그곳에는 눈에 보이는 붕어 피리와 보이지 않는 메기 뱀장어 등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살았다. 물이 많을 때는 낚시로 붕어 피리를 잡았다.

붉은 여뀌. 냇가에 자생하며 독성이 강하여 줄기를 찧어 물에 넣으면 고기들이 물위로 나왔다. 유병길 기자
붉은 여뀌. 냇가에 자생하며 독성이 강하여 줄기를 찧어 물에 넣으면 고기들이 물 위로 나왔다. 유병길 기자

냇물이 말라서 보 밑에만 물이 고여 있을 때는 붉은 여뀌를 베어 잘게 썰어 절구통에 찧거나 돌 위에 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물에 풀어 놓으면, 여뀌의 매운맛 때문에 고기들이 잠시 물 위에 뜰 때 족대로 건져 올렸다.  

족대. 손잡이 대나무 두 개 사이에 그물을 묶어 판매 하였다. 통발과 같이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유병길 기자
족대. 손잡이 대나무 두 개 사이에 그물을 묶어 판매하였다. 통발과 같이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유병길 기자

여뀌보다 더 매운 것은 산초나무(제피)의 잎이나 나무껍질이다. 뒷산에는 산초나무가 없어서 형들과 같이 노음산에 가서 베어오면서 가시에 많이 찔렸다. 나무 껍질을 벗겨 솥에 넣고 불을 때면서 볶아 헌 자루에 담아 장대 끝에 묶어 보 위의 물속에 넣어 흔들면 붉은 물이 우러났다. 조금 있으면 보 밑에는 붕어가 뜨고 보이지 않던 메기 뱀장어까지 물 위에 솟아올라 족대로 신속하게 건져 올렸다. 매운 맛에 놀랐지만, 물고기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산초나무의 열매껍질(제피)은 절구통에 찧어 추어탕 끓일 때 첨가하여 먹고 있다. 일본으로 수출 길이 열려 지리산 밑에서는 농지에 재배하여 외화도 벌어들인다. 시골 농가에서는 한두 포기 심어서 봄에 돋아나는 새순을 꺾어 고추장에 찍어 먹고, 열매를 따서 이용하였다.

1960년대 후반 공동우물 소독약(크로칼키)이 동네에 나왔다. 헌 양말 속에 넣고 나무 막대에 매어 보 둑에 서서 물속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 놀란 메기 뱀장어들이 보 밑으로 튀어나왔다. 족대를 들고 기다리던 친구가 신속하게 잡아 올렸다. 환경에는 피해가 없었다. 자동차 배터리로 물고기 잡는 배터리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자전거 있는 집에서는 전조등 선에 긴 전선을 연결하여 대나무 막대 두 개에 연결하였다. 한 사람은 자전거 바퀴를 계속 밟고 한 사람은 양손에 대나무 하나씩 들고 고기를 잡았다.

1970년대는 삼중 그물이 나왔다. 냇가를 가로질려 그물을 쳐놓고 밑에 내려가서 위로 물장구를 치며 올라가면 피리가 올라가다 그물에 걸려 잡았다.

상주에 사는 양상석 씨가 저녁에 새 보에서 메기 뱀장어를 많이 잡았다. 메기와 뱀장어를 그렇게 많이 잡아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란다. 큰 솥에 푹 삶아서 가족이 보신하였다. 친구 갑이는 여름방학 때 가끔 배터리를 빌려와서 친구들과 같이 정철 앞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반찬을 만들어 드렸다. 그곳은 항상 물이 흐르고 냇가에 큰 돌과 바위가 있어서 물고기가 살기에 좋은 곳이라 처음에는 뱀장어도 여러 마리 잡았으나 횟수가 거듭될수록 큰 고기는 없었다. 많은 비가 와서 큰물이 흐르고 나면 큰 고기가 잡혔고, 나중에는 미꾸라지 붕어만 잡혔다.

1970년대 식량 증산 차원에서 간이로 만든 나무 보를 보조금을 지원하여 시멘트로 튼튼하게 만들어 보의 기능은 완벽했지만, 물고기들의 집은 없어졌다.농약이 판매되면서 일부 몰지각한 자들이 냇물에 농약을 풀어 몇 km 밑에까지 물고기가 전멸되는 파렴치한 사건들도 많았다.

맨발로 뛰어다니며 물고기를 잡던 그 냇가를 가끔 가보지만 생활하수에 오염되어 시골의 하천도 썩어 있다.썩은 하천을 피리 붕어 떼가 노니는 청정 하천으로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너나 할것없이 주방세제, 세탁용 세제를 줄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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