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⑭ 단옷날
[꽃 피어날 추억] ⑭ 단옷날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6.11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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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는 설, 추석 다음으로 손꼽히는 명절이었다.
동네마다 큰나무에 그네를 매어 처녀 총각 어른들이 그네를 뛰며
술안주를 준비하여 어른들 대접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쉬는 날이었다.
놀이터에서 딸이 타는 그네를 밀어주는 아빠. 유병길 기자
 볏짚으로 꼰 그넷줄을 잡고 뛰는 사진을 찾을 수 없어, 놀이터에서 엄마가 딸이 타는 그네를 밀어주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단옷날<5월 5일(음력)>은 설, 추석 다음으로 손꼽히는 날이었다. ‘새마’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그네를 뛰며 즐겁게 하루를 쉬었다. 단옷날만은 처녀 총각들이 어른들 눈치 안 보며 만나서 같이 놀 수 있어 좋아들 했었다.

1950년대 그네를 매기에 좋은 나무. 유병길 기자
1950년대 같으면 그네를 매기에 안성맞춤 나무형세이다. 유병길 기자

단오 십여 일 전부터 마을 총각들은 자주 모여 올해는 어떤 나무에 그네를 맬 것인가? 그넷줄은 언제 꼬며, 어른들 접대할 술안주는 무엇으로 준비할 것인가 등등 회의를 하였다. 단오 이삼일 전에 각자의 집에서 볏짚 몇 단씩을 가져와 짚북데기를 완전히 추려내고, 물을 뿌려 헌 멍석으로 덮어두었다가 볏짚이 수분을 흡수하면 볏짚 밑둥치를 떡메로 부드럽게 두드려 줄을 꼬았다.

연자방아가 있던 공터에서 한 줌의 볏짚 밑둥치를 묶고 한 사람은 짚을 잡고 또 한 사람은 낫을 묶은 곳에 끼워 낫자루를 쥐고 돌리면 볏짚이 꼬였다. 볏짚 잡은 사람이 볏짚 중간 부위에 새 볏짚을 조금씩 끼우면 볏짚이 연결되어 꼬였다. 낫을 잡은 사람은 돌리면서 계속 뒤로 나갔다. 예상 그넷줄 길이의 두 배 반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이 중간 부위를 잡고 양쪽 끝이 한쪽으로 모이게 하였다. 새끼를 꼬듯이 돌릴 때 양쪽 끝을 잡은 사람이 끝을 서로 바꿔 잡으며 돌려주면 어른 팔뚝 굵기의 튼튼한 그넷줄이 꼬여졌다. 다 꼬여진 그넷줄은 줄다리기하듯이 힘껏 당겨 튼튼함을 확인하였다. 동네 뒤 100여 년 된 팽나무에는 별명이 다람쥐인 동네 맏형이 올라가서 굵은 가지에 정성스럽게 매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별명이 돼지인 막내가 올라가서 “탕” “탕” 굴러 안전 시험도 하였다. 발판은 40 Cm 정도 되는 나무 막대 두 개에 굵은 새끼줄을 엇갈리게 감아서 만든 후 그넷줄에 끼웠다.

단옷날 여인들은 액운을 쫓는다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 유병길 기자
단옷날 여인들은 액운을 쫓는다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 유병길 기자

단옷날 봉강리와 상주지역 여인들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였다. 처녀들은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 끝에 자주색 댕기와 같이 궁기(천궁) 줄기를 달았고, 아주머니들은 비녀 꽂은 머리카락 사이에 천궁 줄기를 꽂아 독특한 향기도 풍기고 액운도 멀리하였다.

궁기(천궁)를 집집마다 키우며 단옷날 머리에 꽂았다. 유병길 기자
궁기(천궁)를 집집마다 키우며 단옷날 머리에 꽂았다. 유병길 기자

집 집마다 장독대 옆에 심어진 앵두나무가 심겨 있었다. 단오 때가 되면 아가씨 입술같이 빨갛게 익은 앵두를 한 알 한 알을 따 먹을 수 있었다.

단옷날 아침에 처녀 총각들은 미리 약속한 밀가루 들기름 채소를 가져오고, 동네 계에서 관리하는 그릇과 수저를 빌렸다. 멍석 두세 개와 솥뚜껑 삼발이 마른 나무를 가져왔다. 처녀들과 아주머니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그네도 뛰고, 한쪽 구석에는 삼발이 위에 솥뚜껑을 뒤집어 얹고 솔가지로 불을 피워 전을 부쳐 멍석에 술상을 차려 어른들 대접도 하였다.

긴 치마가 다리와 그넷줄을 휘어 감고 자주색 댕기를 펄럭이며, 제비같이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그 아름다운 자태는 학이 날아오른다고나 할까? 그네는 남성보다는 여인들의 전용물이었다. 남자가 뛰면 볼품이 없는데, 여인들은 혼자 뛰거나 두 사람이 쌍그네를 뛰어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네 높이뛰기 시합도 하였는데, 발판 밑에 가는 새끼 줄을 매어 새끼줄이 많이 당겨 가는 사람이 일등을 하였다.

어른들이 뛰고 집에 가면 그때부터 그네는 어린아이들의 몫입니다. 저녁 늦게까지 즐겁게 놀았다.

단오때 익었던 앵두가 올해는 일찍 익었다. 유병길 기자
단오 때 한창이던 앵두가 올해는 일찍 익었다. 유병길 기자

60년대 초반 처녀 총각들이 직장을 찾아 도시로 많이 나갔다. 농촌을 지키는 처녀 총각이 적어 그네를 맬 수가 없었다. 물못자리를 주로 하던 시기에는 단오가 지나고 십여 일 후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1970년대 통일벼가 보급되어 물못자리가 보온 절충 못자리로 바뀌고, 1980년대는 기계 모내기를 하면서 모내는 시기가 앞당겨져 바쁜 모내기 철과 단옷날이 겹쳐져 단오의 명성이 떨어졌다. 올해는 작년에 윤달(4월)이 있어서 봉강리의 모내기가 다 끝난 6월 14일이 단옷날이다.  '새마'에서 샤인머스캣포도, 배, 사과, 하우스 오이 등 소득작목을 재배하는 젊은 사람들의 나이가 칠십이라 단옷날을 즐길 수가 없다.  

달력에만 24절기와 같이 단오가 표기되어 있을 뿐, 단옷날을 기억하는 사람도 줄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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