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⑩ 왕골자리(돗자리)를 보셨나요?
[꽃 피어날 추억] ⑩ 왕골자리(돗자리)를 보셨나요?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5.24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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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골을 재배하여 껍질을 벗겨 말려 보관하였다가 겨울에 자리틀에서 왕골로 자리를 짰다. 종이 장판을 바르기 전까지 누구나 방바닥에 깔고 생활하였다.
왕골로 왕골자리를 짜든 자리틀. 유병길 기자
왕골로 왕골자리를 짜든 자리틀.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초가집을 지으며 방안에 구들장을 놓고 흙으로 편편하고 깨끗하게 발랐다. 부엌 아궁이에서 나무로 불을 때면 구들장 밑을 통하여 굴뚝으로 연기가 나갔다. 방바닥의 흙이 마르면 왕골자리 두세 개를 붙여 깔고 생활하였다. 겨울에 여러 형제가 방안에서 장난을 칠 때는 방안은 먼지로 가득하였다.

매년 새 자리로 바꾸어 깔면 좋은데 돈 때문에 그렇지 못하였다. 자리가 떨어져 왕골이 부서지면 기어 다니던 어린아이들의 무릎에 박혀 염증이 많이 생겼다. 자리를 만드는 왕골은 거의 모든 농가에서 재배하였고 자리를 짜서 사용하였다. 왕골을 재배하지 않는 농가는 사다가 깔았다.

보통 농가에서는 미나리 재배포장과 왕골 재배포장을 같이 사용하였다. 벼 못자리할 때 미나리 포장 한쪽에 왕골 묘판을 만들었다. 5월까지 미나리를 베어 먹고 미나리 씨앗 할 것은 논둑 밑에 한 줄 남겨 두고 논을 갈고 써레질하여, 왕골 모를 모 심듯 심고 키웠다.

왕골과 많이 닮은 방동사니의 사진. 유병길 기자
왕골 사진은 구할 수 없어  거의 똑같이 닮은 '방동사니'의 사진이다. 유병길 기자

 

8월에 왕골꽃이 피면 줄기의 길이는 1.5~2m 정도가 되었다. 열매가 익고 줄기가 단단하여지면 낫으로 베어 잎을 벗기고 씨앗이 달린 줄기 끝을 잘랐다. 내년에 씨앗 할 만큼은 말려서 보관하였다. 왕골 줄기는 묶어서 집으로 운반하였다. 그늘에서 줄기 끝은 어린애들이 잡고 어른들은 대나무로 만든 칼로 왕골 밑 부분을 찔러서 겉껍질을 벌려 끝까지 벌어지면 어린이들이 떼어서 한쪽에 모았다. 세 면의 겉껍질을 떼어내면 솜같이 희고 말랑말랑한 속은 따로 모았다. 왕골을 다 쪼개면 겉껍질과 속껍질을 햇빛에 펴서 잘 말린 후 보관하였다.

왕골을 베어낸 곳은 갈고 써레질을 한 후에 구석에 두었던 미나리를 낫으로 베어 짧게 잘라 논에 고루 뿌려 두면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미나리 논이 되어 가을부터 봄까지 미나리를 베어 반찬으로 먹을 수 있었다.

비가 내려 들일을 못 할 때는, 삼베를 짜는 짧은 삼으로 가는 노끈을 꼬아 둥글게 감아 모아 두었다가 겨울에 자리를 짰다. 자리틀에도 양쪽에 고리가 있어서 바디는 위에, 긴 쇠봉은 밑에 걸었다.

자리틀 바디로 왕골자리를 짰다. 유병길 기자
자리틀 바디로 왕골자리를 짰다. 유병길 기자

노끈을 자리틀에 한 바퀴 돌려 바디 구멍에 끼워 쇠 파이프에 묶어 날줄을 메었다. 자리 바디의 구멍은 보통 210개 정도인데 말려 놓은 왕골의 길이에 맞게 바디 구멍에 노끈을 끼웠다. 바디 구멍에 노끈을 다 걸면 양쪽의 고리를 벗기고 쇠봉을 밑으로 내리고, 자리틀 뒤쪽에서 틀과 노끈 사이에 둥근 빗장을 끼어 두 발로 밑으로 내리면 날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왕골자리를 짰다. 한 사람은 자리틀 정면에 앉아서 바디를 위로 들어서 앞으로 당겨 날줄이 벌어지면 자리틀 옆에 앉은 사람은 얇은 대나무 바늘 끝에 왕골 밑 부분을 약간 접어서 바디 밑으로 밀어 넣고 대나무 바늘을 빼면 바디를 밑으로 내려쳤다. 다시 바디를 들어 뒤로 밀면 옆에 앉은 사람이 대나무 바늘을 넣으면 바디를 잡은 사람이 왼손으로 고리에 걸어주는 왕골을 당겨서 빼면, 바디를 내리치면서 자리를 짰다. 말린 왕골은 볏짚보다 가늘어서 왕골자리를 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뼘 정도 짜면 바디를 위로 올려 엇비슷하게 놓고 양쪽 줄 밖으로 나온 왕골을 조금씩 노끈 두 줄에 돌려 두 줄 사이에 끼워 마무리하면서 짰다.

한 면을 다 짜면 뒤에 빗장을 빼고 짠 앞면을 밑으로 밀어 뒤로 보내고 다시 빗장을 박고, 앞면을 다 짜면 다시 빗장을 풀어 뒤로 밀고 빗장을 박아 짰다. 자리를 다 짜면 빗장을 빼고 고리를 위로 올려 바디를 고리에 걸고 날줄을 끊고 엮으면 끝이 났다.

왕골로 짠 왕골자리. 유병길 기자
왕골로 짠 왕골자리. 유병길 기자

자리는 잘 말아 두었다가 장날에 팔거나 집에서 방에 깔 때는 양쪽에 나와 있는 왕골은 가위로 깨끗하게 잘라서 방에 깔았다. 처음 깔면 색상도 좋고 매끈매끈한 것이 너무 좋아 애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왕골 속대 말린 것에 물감을 들여 짚신 봉쇄기(봉태기) 등을 만들 때 섞어 만들어 모양을 내는 데 활용하였다.

1950년대 종이 포대에 담긴 미국의 잉여농산물 밀가루가 무상으로 공급되었다. 머리가 좋은 우리 민족은 왕골자리를 걷어내고 방바닥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밀가루로 풀을쑤어 밀가루 포대 종이를 두 번 바랐다. 들기름을 붓으로 바르거나, 생콩을 찧어 자루에 넣어 바닥에 문질러 종이에 기름을 먹였다. 때도 안 묻고 물을 흘려도 스며들지 않아 장판의 수명을 길게 하였다.

종이 장판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왕골자리 판매가 줄어 왕골 재배 농가가 줄었다. 기름을 먹인 두꺼운 장판 종이를 판매하여 방바닥을 발랐다. 1970년대 비닐장판이 판매되면서 왕골 재배와 자리 짜는 모습은 영원히 사라졌다. 자리틀과 바디는 농경 유물관에 전시되어있다.

강화도에서는 왕골자리에 문양을 넣어 짠 화문석을 만들어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 업체에 공급하고, 현지에서 판매도 하고 있는데 비싸게 팔려 농가 소득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왕골자리의 수명을 늘리기위하여 뒷면에 천을 붙이고 가장자리도 천으로 싸서 비싸게 판매하였다.

요즘 방바닥 거실 등에는 고급 비닐장판, 종이 장판, 강화마루를 깔고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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