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고향 , 대구시 북구 도남동(道南洞)
도심 속의 고향 , 대구시 북구 도남동(道南洞)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07.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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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칠곡에 마지막 남은 고향 정취 풍기는 시골 마을,
도남마을 랜드마크 2만여평 규모의 도남저수지 자연의 척도
250년 느티나무 마을의 상징, 민속신앙의 대상, 길흉화복의 동반자
칠곡지구 젖줄이 되는 반포천(反甫川)의 근원 도남지
현대사회에서 보호수 나무는 생태자산이자 역사이며 문화.
도덕산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도남마실이 도남지에 아름다운 데칼코마니를 만들고 있다. 장희자 기자

대구 북구 도남동(道南洞) 지명은 마을이 도덕산(道德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유래되었다. 1963년 대구시 북구에 편입되었으며, 자연부락으로는 덕응, 모두이 등과 불당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덕응ㆍ전골: 도남2동 자연부락으로 덕응리는 도덕산 아래 도덕이 잘 전파되어 덕이 응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린 마을이고, 전골은 도덕산 앞에 있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다.

▶모두이ㆍ모데ㆍ모리: 도남1동의 자연부락으로 못 위의 마을이라고 하여  ‘모두이’, ‘모데’ 또는 ‘모리’라고도 부른다. 현재의 위치는 도남지 윗쪽의 마을이다.

▶배고개: 도남동의 고갯길로 이곳에는 예부터 배나무가 많아 불린 부락 이름이다.

▶사창리: 도남1동의 자연부락으로 옛날에 그곳에 군사기지 창고가 있어서 사창리라고 한다. 위치는 도남지 위쪽이다.

▶용골: 현재 50사단 안쪽의 자연부락으로, 이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골짜기의 형국이 용의 형태와 같다고 하여 용골이라고 부른다.    

▶이동리: 부락을 창설한 사람이 ‘이동 전이거’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징걸ㆍ진걸ㆍ니동(尼洞): 도남1동의 자연부락으로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진골 혹은 진걸, 한자어로 표기하여 니동(尼洞)이라고 한다.

국우동에서 북북동으로 도덕산 골짜기를 따라 약 2.5㎞ 올라가면 도남동이 나타나는데 마을입구 농로 옆에는 노거수 느티나무 한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도남저수지에서 350m정도 떨어진 도남동 산87번지에 있는 이 나무는 1982년 10월 30일 북구청이 보호수로 지정했다   

도남동 마을입구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느티나무 보호수. 장희자 기자

수령 250년, 높이 15m,  나무 둘레 4.5m이다. 원둥치는 지상 1.2m에서 2갈래로 나눠졌는데 서북쪽 둥치 밑둘레는 3.1m, 동남쪽 둥치의 밑둘레는 2.3m이고, 가지는 동으로 7.6m, 서로 8.6m,  남으로 8.3m, 북으로 7.6m 퍼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한 때 이 나무는 마을 당산나무로 마을의 무병장수와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당제(堂祭)를 지낸 곳이다.   이와 얽힌 이야기도 전해 오는데, 어느 날 마을 한 장로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이 나무를 잘 가꾸면 마을이 번성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고 했다. 그 후 당제를 지내며 정성껏 보살핀 결과 마을이 평안하고 모든 일이 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덕산인 이동린(李東麟)이 1776년(영조 52) 이곳에 입향한 것을 기념해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도남지(道南池)는 하류에 있는 농지에 농업용수 목적으로 1941년 12월 25일 착공,  1944년 3월 31일 완공되었다. 2만 평이 넘는 큰 저수지로 유역 면적은 450㏊, 만수 면적은 8.0㏊, 유효 저수량은 38만5천㎡, 수혜 면적은 49㏊이며 도남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있다.

도남동은 정선 전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북구 도남동 88번지에는 도남재(道南齋)라는 재실이 있다. 정선 전씨 41대조인 고려 개국공신 충렬공(忠烈公) 전이갑과 충강공(忠康公) 전의갑의 고려 때의 행적을 기리고자 1800년을 전후해 세워졌으나 1910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재실은 일자형 3칸 홑치마 형태를 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유화당(有華堂)ㆍ창렬각(彰烈閣)ㆍ정효각(旌孝閣) 등이 전한다. 유화당은 인천 이씨 재실로 이해준(李海準)이 1744년에 지었으며 3칸 규모이다. 창렬각은 인천 이씨 이완재(李完在)의 큰어머니를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1932년에 지었으며 목조기와집이다. 정효각은 인천 이씨 문중이 충효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지은 건물로 3칸 규모이다. 민속으로는 어사용이 전하는데 나무꾼이 나무할 때에 부르는 소리로서 4음절 형식이고 1음절은 4자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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