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민속마을 순천 낙안읍성
살아 있는 민속마을 순천 낙안읍성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09.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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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600여년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대표적인 계획 도시,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 지정, 총 13점의 문화재(국가지정 10, 도지정 3 )보유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순천 낙안읍성 전경: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 지정

조선시대 전기부터 600여 년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도시로, 성곽, 중요민속자료가 있다

순천 낙안읍성 동문(낙풍루)과 망루

소리의 고장으로서 가야금병창, 판소리 등 유무형의 자원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내에 주민이 거주한다

낙안읍성 객사: 고을 관아에서 가장 으듬가는 건물로 중앙관리나 외국 사신들의 숙소이다.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 이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東軒), 객사(客舍),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임경업장군비각: 낙안군수 임경업 장군이 임진왜란때 소실된 낙안읍성을 보수하고 청나라와의 전쟁때 큰 공을 세운것을 기리기 위해 군민들이 세움.

조선 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4년 (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33세때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낙민루: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조선시대 호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6.25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 복원

다른 지역 성(城) 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 길이가 1천4백십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 1천 평에 달하는 3개 마을 생활 근거지를 감싸안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 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동헌: 지방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

지금도 성 안에는 9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무당: 동헌 안에 있으며 송사를 다루었으며, 사무란 고을 수령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백성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동문을 비롯 서, 남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용인, 제주 민속마을 같이 전시용이나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모습이기 때문이다.

낙안객사: 고을의 관아에서 가장 으뜸가는 건물로 중앙관리나 외국 사신들의 숙소이다.

순천 시가지에서 서쪽 22㎞ 거리의 읍성 민속마을은 6만8천여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판소리 송만갑 명창 생가

남부 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이  있다

낙민관: 낙안읍성 홍보영상관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 시절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엔 절구통도 있다

낙안읍성 서문과 서문성벽집
낙안읍성 돌담길과 은행나무 보호수
낙안읍성 성벽길
금전산 봉오리와 초가집
낙안읍성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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