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정신적 스승과 과거와 미래를 잇다
도산서원, 정신적 스승과 과거와 미래를 잇다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09.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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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 퇴계 학문, 덕행 기리는 사적 제170호, 대한민국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어 정신적 스승의 표상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도산서원 정문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진도문: 정문을 지나서 전교당 사이에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곳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 선생이 낙향 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농운정사: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르칠때 기숙사 역할을 하던곳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박약재(동재): 도산서원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

도산서원은 주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 공간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동.서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홍의재(서재):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로 지어진 집.

동편 도산서당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는데 안 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 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로서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배향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上庫直舍)가 있으며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락서재: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때 정사성 등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으며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진각: 퇴계선생 유물 전시관으로 약 400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藏板) 및 이황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고직사: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守護人)들의 살림집
시사단: 조선 정조 때 지방별과(地方別科)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 도산서원에서 소유,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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