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의상 대사와 선묘 낭자의 사랑
'부석사'… 의상 대사와 선묘 낭자의 사랑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09.06 11: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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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우리나라 7개 사찰중 하나인 명찰,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6점, 도 유형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 소장
영주 부석면 북지리 소재 부석사입구의 폭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화엄종의 증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으뜸 사찰이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華嚴敎學)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여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한다.

태백산 부석사 입구인 일주문

이 절은 신라 화엄종의 도량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불(主佛)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安養門)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는 것이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는 천왕문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무량수전(無量壽殿)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부석사의 유래가 된 뜬돌인 부석

1916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3년(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다.

봉황산부석사라 적혀 있는 범종루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座像)(보물 제2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보물 제249호),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255호)등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안양루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조사당(祖師堂)(국보 제46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左像)(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국보 제46호), 고려각판(高麗刻板)(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圓融國師碑)(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삼층석탑(三層石塔)(도유형문화재 제 130호) 등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遺物展示館)에 보관되어 있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소백산맥 산능선

부석사는 7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수행활동으로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어 우리나라 불교 전통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석사 경내 잘 정돈 된 정원과 건축물의 조화

사찰의 종교적 기능과 건축요소를 진정성 있게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에 해당하여 우리나라 불교전통 증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연속성 부분에서 큰 의미를 부여받아 2018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부석사 전경

특히 무량수전의 흐를듯한 건축미는 우리조상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지금도 살아 숨쉬는 듯하며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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