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革裏屍(마혁리시)
馬革裏屍(마혁리시)
  • 신문수 기자
  • 승인 2020.07.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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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가죽으로 자기 屍體(시체)를 싼다는 뜻

- 옛날에는 戰死(전사)한 將帥(장수)의 시체는 말가죽으로 쌌으므로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 오지 않겠다는 강한 意志(의지)를 뜻하는 말

· 馬(마) : 1.말 2.아지랑이 3.산가지 4.크다 馬脚(마각) 馬夫(마부) 馬車(마차) 名馬(명마) 野馬(야마) 馬耳東風(마이동풍)

· 革(혁) : 1.가죽 2.피부 3.갑주,투구 4.고치다 5.경계하다 6.엄하다 革帶(혁대) 革命(혁명) 革新(혁신) 改革(개혁)

· 裏(리) : 1.속,안 2.내부 3.가슴속 裏面(이면) 裏書(이서) 腦裏(뇌리) 表裏不同(표리부동)

· 屍(시) : 1.주검 2.시신 3.송장 屍身(시신) 屍體(시체) 屍山血海(시산혈해)

馬援(마원)은 後漢(후한) 왕조 創建(창건)에 적지 않은 戰功(전공)이 있었으므로 新息候(신식후)에 봉해져 食邑(식읍) 3천 호를 받았다. 都邑地(도읍지)인 洛陽(낙양)에 凱旋(개선)했을 때 친구들이 계속 맞이하여 그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그의 친구 중에 孟冀(맹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個性的(개성적)인 의견을 서술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두와 같은 축사를 敍述(서술)했기 때문에 마원은 말했다. "자네는 무엇인가는 나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해주리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 신식후로 봉하여지기는 하였으나 功績(공적)에 비하면 넘치는 상이다. 이것으로 길게 몸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모쪼록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지 敎示(교시)해 주기 바란다." 하지만 맹기는 삼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匈奴(흉노)와 烏桓(오환)은 항상 北邊(북변)을 침범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공격하고 싶다. 남자는 항상 戰場(전장)에서 목숨을 버릴 준비를 해야만 하고 말가죽으로 시체를 둘러쌀 수 있는 일이야말로 宿願(숙원)이다." 듣고 있던 맹기는 감동해 마지않는 듯이 말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진실로 勇猛(용맹)스러운 사람이다." 마원은 62세 때 武陵(무릉)인 五溪蠻(오계만)을 討伐(토벌) 중에 적들과 싸우다 戰死(전사)하여 생전에 그의 公約(공약)인 “전장에서 죽는다”를 몸소 실천한 眞正(진정)한 武人(무인)이다.

6·25 戰爭英雄(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天壽(천수)를 다하고 지난 15일 대전현충원에 安葬(안장)되어 永眠(영면)에 들었다. 장군은 壽衣(수의)로 전쟁 당시 戰鬪服(전투복)을 사용하였으며, 戰死(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평소 장군의 遺志(유지)를 받들어 경북 칠곡 다부동과 경기도 문산 파평산 등 6·25전쟁 당시 激戰地(격전지) 8곳의 흙이 墓域(묘역)에 뿌려졌다.

永訣式(영결식)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역대 육군참모총장 野黨(야당) 지도자와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陸軍葬(육군장)으로 엄숙히 진행되었고,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에 이어 국무부도 “한미동맹 構築(구축)에 일조한 백선엽 장군에게 진심 어린 哀悼(애도)를 표한다”는 聲明(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여권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으며, 弔辭(조사)도 없었다. 일부 정당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간도특설대에서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장군의 行蹟(행적)을 들어 國立墓地(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꼬집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장군은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만약 내가 後退(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라고 명령하여 결연한 의지로 背水陣(배수진)을 쳐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仁川上陸作戰(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된 것은 그 누구도 否認(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史實(사실)이다. 장군이 6·25 戰史(전사)에 세운 功績(공적)에 대하여 진영논리로 毁損(훼손)하여 고인을 욕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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