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말과 사이비 종교
(54) 말과 사이비 종교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3.30 09: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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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삶의 이치가 들어 있다. 2차세계대전 때 비엔나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였던 빅터 프랭클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는 비참한 감옥에서도 연구를 계속했다. 죽음에 직면한 극한 상황에 스스로 절망하여 자결하거나, 희망을 잃고 자학에 빠진 수용소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의미치료법(Logotherapy)를 창시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석방된 사람들에게 일어난 두 가지 사실을 소개했다. “드디어 우리의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후, 첫 번째 한 행동은 당연히 굶주린 육체를 회복하는 식욕 충족이었다.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먹었다. 둘째는 마음이 이끄는 행동, ‘말하기’였다. 감옥에서 나온 그들은 처음에는 먹기만 하다가, 그 다음에는 먹으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사람의 기본 욕구 의(衣) 식(食) 주(住) 다음에 ‘언(言)’을 추가해야 한다.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현생 인류를 ‘지혜가 있는 사람’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는데, 필자는 여기에 ‘말하는 사람’ 즉 호모 링구얼(Homo Lingual)이 선행한다고 생각한다.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우선 호흡(呼吸), 즉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동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물과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그 다음은 바로 언어사용이다. 말은 귀로 들은 것(吸)을 생각한 다음, 입으로 내놓는(呼) 행동으로 살아간다. 필자는 “말은 마음의 호흡이다”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하여 말을 하지 못하면, 마치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해서 죽을 지경에 이른다. 말이라는 마음의 호흡이 막혔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마음의 호흡, 즉 말이 필요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사이비 종교이다. 사이비(似而非)는 ‘겉은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라는 뜻으로 2500여 년 전 공자와 맹자가 적시(摘示)했던 가르침이다. 옛날에는 사이비 선비가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들을 괴롭혔다. 오늘날은 사이비 종교가 민중들의 삶에 바이러스를 심고 있어서 유감이다. 이번 코로나19를 사태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주된 무기는 말이다. 기독교의 경우 성서의 말씀을 구원과 영생으로 왜곡하여 재산을 바치게 하고 가족과 이웃의 유대를 끊어버린다. 신자들을 오직 교주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노예로 만들어간다고 과언이 아니다.

'논어'와 '맹자'에서 경고했던 사이비 선비, ‘향원(鄕愿)’이 오늘날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치에 끼어들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사이비 지식인이 그들이다. 몰지각한 언론이 공조하면서 작동하고 있어서 유감이다. 언론들이 현대판 '향원'의 ‘말도 안 되는 말’을 얼른 받아와서 경쟁하듯 온라인 오프라인에 퍼트린다. 그 ‘어처구니없는 말’이 여론의 뭇매를 당해도 거듭해서 같은 짓을 반복하는 현실이 한심하다.

오염된 공기를 계속 호흡하면 건강을 해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마음의 호흡인 말도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오염된 말을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여 절망에 빠지거나 자살에 이르게 된다. 총선을 앞두고 그 이후에도 정치가들이 말이 오염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이 정치를 오염시키면 나라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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