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스마트폰 격물치지(格物致知)
(57) 스마트폰 격물치지(格物致知)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4.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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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호 기자
조신호 기자

 

일주일 전의 일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개화 직전의 튤립 3포기를 옮겨 심다가 그 중 한 포기 알뿌리(有皮鱗莖)가 툭 부러지고 말았다. 30cm 정도 자란 줄기를 감싼 2개 잎사귀와 우뚝한 꽃봉오리가 아까워서 샘물이 스며드는 진흙 속에 꽂아 놓았다. 시들지 않고 꽃피기를 바라며 성원하는 마음을 알아주는지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시들지 않았다. 나흘이 지나자 꽃봉오리가 반쯤 열리더니, 그 다음날 아침 진홍색 꽃이 피어났다. 알뿌리 없이 역경을 이기며 혼신의 힘을 모아 당당하게 꽃을 피워낸 것이 대견했다. 친구가 멀리서 찾아온 듯 기뻤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이 부러진 것을 며칠 지켜보면서, 튤립의 생육주기에 관한 자료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대체로 대구 지역에는 3월초 쯤 조금씩 땅 속 알뿌리가 새싹을 내밀어 잎사귀와 꽃봉오리도 솟아오른다. 4월 초, 중순에 1주일 정도 꽃이 피고 나서 남은 양분을 뿌리로 보낸 다음, 5월 말 6월초에 잎이 누렇게 변하며 죽어버린다. 그리고 땅 속 구근으로 생명을 보존하다가 봄이 오면 다시 솟아난다. 결과적으로 튤립은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봄, 여름, 가을에 드러냈다가(顯) 겨울 동안 감추어 보존하는(藏) 삼현일장(三顯一藏)이 아니라, 일현삼장(一顯三藏)하는 특이한 식물이다. 봄에 자라서 꽃피고 나서(顯) 여름, 가을, 겨울 동안 땅속에서(藏) 생명을 키우는 도인(道人) 같다.

이번 부러진 튤립 덕분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활연관통(豁然貫通)하여 앎에 이른다’는 격물치지를 실제로 체험하게 되었다. 격물치지는 사서(四書)의 '대학'(大學)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 첫 단계이다. 유학에서 인격을 함양하여 군자의 경지에 이르는 자아실현 교육과정 8단계, 팔조목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로 되어 있다.

그 출발점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다. 남송의 주자(朱熹,1130-1200)는 '격(格)에 이른다(至)'로 해석하여,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했다. 명대(明代) 중기 왕양명(守仁,1472~1528)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심즉리설(心卽理說)을 만들었다.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이고,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므로,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 한다.

필자는 ‘격(格)’자가 ‘나무 목(木)+각(各)’로 결합된 것으로 보아서, 격(格)은 영어로 ‘everything(各) of a tree(木)’ 또는 ‘all of a tree’ 즉 한 그루 나무의 실뿌리에서 잔가지 끝까지 구성하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그 생육과정과 모양, 꽃, 열매, 기능, 냄새와 맛, 화학적인 성분, 자연계 미치는 영향, 용도, 가치 등 하나 하나 모든 것(all)을 통찰하면서 지식에 이르는 이학으로 ‘격물치지’를 인식해 왔다. (여기서 나무 목(木)은 세상만물을 대표하는 명사로 사용되었다.) 이번에 우연히 부러진 튤립이 생명력을 유지하여 꽃 피우는 걸 지켜보면서 무욕으로 궁구(窮究)하는 심학과 이학의 융합으로 작은 기쁨을 얻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격물치지 과정을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아니라, 스마트폰이 연결해 주는 인터넷 데이터 베이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탑보다 제한적이지만, 패스트푸드처럼 매 순간 스마트폰을 켜서 세상 만물의 정보와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필자도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자료 수집에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자연 현상의 미묘한 느낌과 섬세한 감동을 전해 주지 못하는 보조 수단이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은 우리의 근원이며, 스승이며, 미래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자료 조사 보조로 삼으면서, 대자연의 스승을 통해서 마음을 순화하며, 창의성을 함양하는 격물치지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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