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코로나19’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52) ‘코로나19’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3.1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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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말과 글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2003년 3월 중순 홍콩의 미국인 사업가 한 사람이 사망하면서 알려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심각한 호흡기 질병'이 바로 ‘사스(SARS)’ 였다. 그를 치료한 의료진도 차례로 감염시킨 사스는 약 16일 정도 잠복기를 거쳐 갑자기 38℃ 이상의 고열이 나면서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으나, 90%는 1주일 안에 쉽게 회복되었다. 다만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와 같은 허약자의 경우에는 중증으로 진전되어 약 3.5%가 사망했다.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전 세계에 8,096명이 감염되어, 774명이 사망했다.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2012년 4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발생한 ‘급성호흡기’ 질환이었다. 의학적으로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라는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는 박쥐나 낙타 등 동물에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이종 감염되었다고 추정되었다.

기침와 재채기, 그리고 대화를 통한 비말(飛沫)로 감염되어, 2일에서 14일 정도 잠복기를 거치면서 38도 고열, 기침, 호흡곤란이 생겼다. 유럽질병통제센터(ECDC) 자료(2015. 5. 29. 기준)에 따르면, ‘메르스’는 전 세계 25개국에 1,167명을 감염시켜서 479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2015년 5월 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68세의 남성이 첫 확진자로 확인된 이후, 무려 186명이 감염되었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ARS-CoV)와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두 질병의 병원체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2019년 11월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Corona Virus Disease, COVID-19) 병원체도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다. 그런데 왜 <사스>나 <메르스> 같은 고유 명칭을 붙이지 않고 그냥 ‘코로나 바이러스 19(COVID-19)’ 라고 숫자만 붙여졌는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 5월에 발표한 ‘새로운 인체감염질병명칭을 위한 최상의 시행지침(WHO Best Practice for Naming of New Human Diseases)’이라는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는 ‘메르스’처럼 중동이라는 지역 명칭은 물론, 사람과 동물의 이름, 등을 새로운 질명 명칭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규정이 만들어진 배경은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다. ‘정치적 정도(正道)’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정치적 올바름(PC)은 지구촌에 확산된 일종의 ‘언어순화 운동’이다. 여기서 ‘political’ 형용사는 ‘정치적’이 아니라, ‘범(凡)국가적’이라는 뜻이다. PC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이다. 그 시작은 다민족 국가인 미국으로, 1980년대 다른 인권 운동과 함께 강하게 대두되었다. 정치적 올바름(PC)은 출신, 인종, 성,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비언어적 모욕과 차별을 지양하는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라고 되어 있다.(나무위키)

의학계에서는 '사스(SARS 0'나 ‘메르스(MERS)’처럼 쉽게 구분되는 명칭이 아니라, ‘코로나 19’라고 숫자만 붙인 결과에 난색을 표한다. 발음과 의미로 형성되는 말과 글의 핵심은 확실한 ‘구별성’ 즉 ‘명확한 차이점’에 있다. ‘사스’와 ‘메르스’의 차별성이 명확하지만, ‘코로나19’은 그것이 부족하다.

실존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스’와 ‘메르스’는 실존(實存), 즉 그 질병의 실상(實狀)에 바탕을 둔 명칭이고, ‘코로나19’는 ‘WHO의 규정’이라는 인위적인 본질(本質)에 의거한 것이다. 사르트르가 천명(闡明)한 바와 같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 그렇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말과 글도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