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역사의 수레바퀴(歷史車輪)
(51) 역사의 수레바퀴(歷史車輪)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3.09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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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초상
사마천 초상

 

작년 2019년은 ‘광장의 함성’이 격렬했던 한 해였다. 그때 70 중반의 두 친구가 있었다. 친구 <갑>은 자주 광장으로 달려 나가는 ‘행동형’이었고, <을>은 모순된 현실에 걱정하는 ‘은둔형’이었다.

2020년에 접어들자, 4·15 총선을 앞두고 양대 진영의 격렬한 대결이 예상 되었으나, ‘코로나19’ 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 침입하면서 상황이 달리지기 시작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무형의 적, 그 죽음의 그림자 앞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춰선 듯했다.

<을>은 <갑>에게 진 빚이 있어서 늘 미안했다. 2월이 지나 3월이 되자, <갑>의 원망 섞인 그 목소리가 한층 더 새롭게 들려왔다. “또 기다려야 하는가?” <갑>의 이 원망스러운 항변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서로 대결하는 광장의 함성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을>이 <갑>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아! 광장에 나가서 소리친다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걸세. 다른 방법을 찾으며 기다려야 하네!” 이 말은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의미했다. <갑>은 분명 ‘이 친구, 책 좀 본다고, 아는 체 하는 군!’ 라며 원망했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약 2,500여 년 전,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과 모순에서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일조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일어섰다. 춘추시대는 도처에 군웅(群雄)들이 할거(割據)하던 난세(亂世)였다. 그야 말로, 약육강식의 혼돈 속에 군주(君主)들의 관심은 오직 ‘부국강병(富國强兵)’뿐이었다. ‘먹느냐? 먹히느냐?’라는 위기 상황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백성들은 임금의 재산 증식을 위한 노예로 살면서, 전쟁이 나면 싸우다가 죽어야 하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공자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욕심을 버리고 인의(仁義)로 질서(禮)를 회복하여 평화 공존의 사회를 만들고자 모국(母國)인 노(魯)나라 군주에게 인의(仁義)를 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55세(오늘날 70세 쯤)의 나이에 제자들을 데리고 14년간 이웃 나라를 떠도는 고난의 행군, 주유천하(周遊天下)를 시작했다. 위(衛), 정(鄭), 섭(葉), 채(蔡), 초(楚), 노(魯), 다시 위(衛)나라로 죽을 고생을 하며 ‘일이관지(一以貫之)’의 고행을 이어갔다. 공자는 굶어서 죽을 고비, 군사들에게 포위당하는 수모, 그리고 ‘상갓집 개’라는 비난까지 들으며 도(道)를 전하려고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69세에 귀국했다. 14년간의 고행, 그 피나는 현장 학습, 즉 제자들과 문답(問答) 형식의 가르침이 유학의 출발점이었으며 『논어』에 수록되었다.

이와 같이, 공자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탁한 ‘역사의 수레바퀴’의 방향을 바로 잡지 못 했다. 그는 차선의 방법으로 도(道)를 전파할 많은 제자를 가르치다가, 춘추시대 말(末), 기원전 479년 4월,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 사후, 약 250년 동안 더욱 혼탁한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이어지다가, 진시황(BC259~BC210)이 천하를 통일하며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통일 진나라는 불과 15년 만에 멸망을 고했다. 그 종말의 단초는 ‘진승과 오광’이라는 농민군의 반란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방(劉邦(r. BC.202∼BC.195)과 항우(項羽, BC.232∼BC.202)의 4년 간 쟁패(爭霸)가 시작되었다. 항우가 패하여 자결한 뒤, 한(漢) 고조 유방이 재통일하여 오늘의 중국이 출발된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공자 사후 약 25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새로운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 과정을 역사로 기록한 사마천(司馬遷,BC145?∼BC86?)이 『사기』를 쓴 목적이 ①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고(究天人之际), ②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通古今之变), ③학문적 일가를 이루는 것(成一家之言)”이었다. 첫째 목적은 역사의 주축, 즉 하늘과 인간 중에 어느 쪽이 ‘역사의 원동력’인가를 규명하는 것이었으나,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이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①자신의 직분에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면서, ②결정적인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결국 ①의 ‘기다림’과 ②의 ‘저항’이 결합된 조화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광장 함성의 에너지를 국민이 직접 국회에 대통령 탄핵을 요청하는 법적 대응으로 전환일 것이다. 오늘도 <을>은 <갑>에게 이런 점을 충분해 설명하지 못한 미안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