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아! 테스형
(69) 아! 테스형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10.09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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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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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의 화제는 ‘대한민국 어게인’의 가수 나훈아였다. 이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키자!’ 라는 외침이었다. 그 후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신곡, ‘아! 테스형’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메아리치고 있다. 이 노래는 1절(삶)과 2절(죽음)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에 ‘아! 테스형’, 외마디가 8번 반복되는 여운을 남긴다. 지금까지 나훈아 노래는 주로 사랑, 아쉬움, 그리움이었으나, 이번 신곡의 ‘아! 테스형’은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인 동시에 절규였다. 나훈아 자신의 변모이자 우리 대중가요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발전이었다. 이 노래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필자의 견해는 이러하다.

1절은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로 시작된다.  시인 김상용이 일찍이 '남으로 창을 내겠소' 라는 시(1934)에서 “왜 사냐 건 / 웃지요.”라고 했던 것처럼, 나훈아 역시 살면서 한 바탕 턱이 빠지도록 웃으며 삶의 ‘아픔을 묻어두자’ 라고 권유한다. 아픔을 감싸는 웃음! 그것은 노래를 통한 해학(諧謔)이며 ‘포월(包越)’이다.

포월은 ‘품어 안고 넘는다.’는 뜻으로, 일상에 주어진 것을 모두 '포함하면서 그 것을 초월한다.' 라는 승화된 삶의 자세이다. 즉, 주어진 것은 모두 포함하면서 그 상황을 뛰어넘어 보다 나은 새로움으로 도약한다는 삶의 진화를 의미한다.

‘아! 테스형’의 1절은 그냥 오는 오늘을 고마워하면서 살아있으면 반드시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다는 독백이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고, 사랑은 어찌 이 모양이냐고 소크라테스 형에게 반문한다. 2,400여년 전,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었던 말이었던 ‘너 자신을 알아라!’ 즉 ‘인간의 내면을 알아라!’ 라는 말 때문이다. 그 당시 테스형이 툭 내뱉고 간 그 말, 살아보니 도무지 알 수 없는 허구라고 항변하는 노래이다. 도대체 인생을 제대로 알고 했던 말이었던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테스형! 당신 철학대로 살면 세상살이도 편하고 사랑도 쉬우냐는 욱박지름이다. 이천사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걸 되새기며 살아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아쉬움이다.

‘너 자신을 알아라!’ 라는 것은,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직관을 넘어 완전하고 정의로운 '참된 세계'가 실재한다는 지적 추론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그 ‘참된 세계’를 '이데아(Idea)'라 했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 한다. 세월이 흘러,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1844-1900)가 그런 '참된 세계'는 없다고 소크라테스를 반박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이며, 심리적으로 위로하려고 꾸며낸 허구에 불과하다고 파괴했다.

나훈아는 테스형이 강조했던 삶의 허구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는 2절에 와서, '아버지 산소의 제비꽃과 샛노란 들국화'를 소중하게 노래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세상이라는 소신이다. 일상적인 ‘감각의 세계’가 더 아름답고 더 참된 것이라고 절규한다. 훈장 같은 게 무슨 소용인가? 그 무게에 짓눌려 살지 말고, 술 한 잔 하며, 농담도 하며 자유롭게, 세상을 휘어잡고 살자는 것이다. 누군가 정해 놓은 지식에 모가지 휘감겨서 노예처럼 살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철학자가 아닌 가수로 살아보니 삶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공’을 통해 노래한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 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나훈아는 테스형! ‘천국이 있던가요?’ 라고 소크라테스를 강타한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되는 현실적인 아픔이 삶의 실체이므로, 그걸 웃음으로 감싸면 그저 살 만하다고 노래한다. 고담준론을 통한 이데아 세계를 추구하는 것보다, ‘그냥 와준 고마운 오늘과 반드시 오고 마는 내일이라는 현실, 왜 이 모양인지 알 수 없지만 살다보면 답을 알게 된다는 평범한 철학이다.

2절은 나훈아가 터득한 삶의 해답이다. ‘아버지 산소에 피는 제비꽃, 들국화 샛노란 수줍은 웃음’을 통해서 살 만한 세상임을 알 수 있다. 작은 제비꽃은 항상 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피어난다. 제비꽃과 들국화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언제나 보는 이에게 기쁨을 준다. 자연의 순리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 이것이 꽃이 피어나듯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교훈이다. 가끔 지식도 필요하지만, 꽃 같은 정(情), 가슴에 스며드는 따스함, 그 평상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픔을 웃음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는 이데아의 변종(變種), 이념(ideology)적 편향으로 인해 삶의 아픔이 깊어지는 현실에서, 국민들이 깨어나야 위정(僞政)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했다.

가수이자 화가인 밥 딜런(Bob Dylan, 1941- )은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공로를 인정하여 2016년 가수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나훈아 공연의 큰 뜻과 ‘아! 테스형’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전해진 그의 삶의 철학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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