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백범 김구(金九) 선생의 문화 강국
(48) 백범 김구(金九) 선생의 문화 강국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2.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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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염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갈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은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나라」, 1947)

백범 선생은 광복된 조국이 문화의 강국으로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기를 염원했다. 높은 수준의 문화가 인류의 마음 바탕, 즉 ‘인의(仁義), 자비, 그리고 사랑’을 배양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문화가 없으면, 경제력, 과학기술력, 군사력이 발달해도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백범 선생이 염원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면서 경제 부흥뿐만 아니라, 문화의 저력을 발휘해 왔다. 예를 들자면, 정경화와 장한나의 바이올린 연주, 소프라노 조수미와 신영옥의 노래, 지구촌을 휘감는 방탄소년단을 위시한 케이 팝 활동, 그리고 한국의 딸들이 양궁과 골프로 세계를 제압하고 있다. 이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오스카 상 4관왕을 휩쓴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

이 영화는 작년에 국제영화제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제72회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2019. 05. 프랑스 칸)에서 최고 작품의 감독에 주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올해 초,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영화상,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Golden Globes Awards; 2020.01.05. 미국 LA)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73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런던, 2020.02)에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어서 ‘오스카상, 즉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2020.2. 미국 LA)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극영화상으로 4관왕의 위엄을 달성했다. 이 상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이번 수상은 백인 우월주의 장벽을 허물어 버린 동시에, 오스카상의 문호를 개방하여 세계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소식은 광복된 조국이 문화 강국이 되기를 염원했던 백범 선생이 지하에서 크게 기뻐할 경사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뜨거운 박수와 함께 일부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그것은 영화의 주제가 담고 있는 전 세계적인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청전을 딸의 지극한 효심으로 보지 않고, 자식을 죽음으로 팔아넘긴 눈먼 아비와 그것을 틈타서 공양미 3백석을 챙긴 고약한 승려에 초점을 둔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졸렬해진다. 흥부전도 그렇다. 천하에 고약한 놀부와 심약한 흥부의 갈등을 넘어서 이야기 전체에 녹아있는 삶의 교훈으로 볼 때 이야기가 된다. 안동의 하회탈출도 그렇다. 아랫것들이 양반과 선비를 희롱하는 계급 갈등 놀이가 아니라,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고도의 해학(諧謔)으로 승화된 삶의 지혜로 보아야 한다.

예술을 흑백 논리로 가름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 보다 넓고 깊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