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조, 제비 대구 신천에 날아들다
길조, 제비 대구 신천에 날아들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6.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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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고양이나 누룩뱀, 능구렁이가 얼씬거리면 멀리 쫓아버리거나 아예 죽여 없애는 호의까지 베푼다.
엄동설한에 빈 몸으로 쫓겨난 흥부이야기의 백미는 제비의 등장이다.
입이 근질근질할 참에 마을의 동무라도 찾아오면 공치사 끝에 제비 자랑이 덤으로 늘어진다
신천에서 만난 제비가 지푸라기를 물고 있다. 이원선 기자
신천에서 만난 제비가 지푸라기를 물고 있다. 이원선 기자

대구 신천을 거닐다가 제비무리를 만났다. 지푸라기를 물고 진흙을 뒤지는 걸로 보아 신접산림을 위해 새 집을 짓거나 있는 집을 보수 중인 모양이다. 시기적으로 보아 2차 번식기로 접어든 모양이다. 주위에서 또 몇 마리의 제비가 물을 차고 날아올라 사랑의 세레나데를 합창하고 있다.

제비는 참새목 제비과 조류로 몸 길이는 약 18cm 정도다. 몸의 윗면은 푸른빛이 감도는 검정색이고 이마와 목은 어두운 붉은 갈색이다. 나머지 아랫배 부근은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 꼬리 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이동할 때나 번식기에는 단독 또는 암수가 함께 살다가 번식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무리를 짓는다. 둥지 재료를 얻기 위해 땅에 내려앉는 것 외에는 거의 땅에 내리지 않는다.

제비 유조가 둥지에서 어미제비를 기다리고 있다. 이원선 기자
어린 제비 새끼들이 둥지에서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음력 9월 9일. 중양절(9는 원래 양수이며, 양수가 겹쳤다는 뜻) 강남(동남아시아, 뉴기니섬, 오스트레일리아, 남태평양 등지)에 갔다가 음력 3월 3일, 삼짇날 돌아온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같은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다시 같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서 민간에서는 길조로 여겨왔다. 주요 먹이로는 파리, 딱정벌레, 매미, 날도래, 하루살이, 벌, 잠자리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집은 건물이나 교량의 틈새에 둥지를 트는데 보통 한 집에 1개의 둥지를 짓고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서 사용한다. 귀소 본능이 강해서 여러 해 같은 곳을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8일 동안 품고 부화한지 20∼24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제비는 사람과 친숙한 조류다. 그들의 먹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먹는 곡식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게다가 사람들이 기피하거나 피해를 주는 곤충들을 주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여름철 농촌으로 가면 집 안에 집을 지어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새들이라면 집을 부수거나 쫓아버릴 테지만 제비만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안 오면 섭섭해 할 지경이다. 배설물은 당연한 것으로 마땅히 치우며 야생고양이나 누룩뱀, 능구렁이가 얼씬거리면 멀리 쫓아버리거나 아예 죽여 없애는 호의까지 베푼다.

이소를 마친 어린 제비가 전깃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이소를 마친 어린 제비가 전깃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제비에 관한 전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5호로 지정된 안동 이천동석불상(한 때는 제비원미륵불로 불렸다)에 관련한 연이 낭자와의 전설은 제비가 단순한 새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11세기 초 이곳 지방에서 부잣집 아들이 죽어서 저승엘 갔다. 염라대왕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그의 창고를 열어보게 하였고 그의 창고를 열자 텅 비어 있었다. 이에 이웃한 연이 낭자의 창고를 열어 3천 냥을 빌은 뒤 소생하였다. 개과천선을 한 아들은 저승에서 빌린 3천 냥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연이 낭자에게 전하였다. 졸지에 많은 돈이 생기자 연이 낭자는 이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라 여겨 전 재산을 들여 불상 조성에 나섰다. 불상이 조성되자 이번에는 비바람을 막고자 덮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막 끝나갈 무렵 공사를 하던 인부가 추락하니 몸이 산산 조각나고 조각조각 난 몸은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인근에 절을 세우고 연미사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제비에 관한 이야기로는 흥부놀부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오장육부에 심술보가 하나 더 붙어 칠부를 가진 놀부와, 아버지의 유산을 고스란히 뺏기고 엄동설한에 빈 몸으로 쫓겨난 흥부이야기의 백미는 제비의 등장이다.

엄동설한 눈밭에 쫓겨난 흥부가 움막을 틀어 누우니 머리는 거적을 벗어나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고 발과 발목은 거적을 벗어나 눈밭에 올라앉더라! 꺾쇠, 돌쇠, 개똥이, 끝순이, 말자 등등의 이름보다는 부르기도 싶고 기억하기도 쉬운 일남, 이남, 삼남으로 시작해서 19남으로 끝나니 자식이 도합 19명, 21명의 대식구다. 알거지로 쫓겨나고 보니 호구지책이 막막하다. 마누라 등쌀도 등쌀이지만 본인도 배가 고픈지라 쌀 됫박이라도 꾸어볼 요량으로 형님을 찾아가는 중 부엌에서 밥을 푸던 형수를 만나 밥주걱으로 귀싸대기만 호되게 얻어 맞는다. 얼얼한 볼을 만지다가 밥풀이 만져지자 반가운 마음에 다른 쪽 뺨을 내밀지만 공연한 매를 벌어 부지깽이 춤사위에 벌통을 엎은 듯 부리나케 쫓겨난다. 이야기의 전개상 놀부와 마찬가지로 부부는 일심동체라 그 마누라의 악행을 고발하고자 지어낸 이야기로 형수가 시동생을 이렇게 무시한 경우는 거지반 없다.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 먹는 어린제비들. 이원선 기자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 먹는 어린 제비들. 이원선 기자

그해 겨울을 어떻게 넘겼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차치하고 21명의 대식구가 북풍한설이 춤을 추는 들판에서 전원 살아났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어쨌든 봄이 왔고 제비가 나타난다. 복을 짓는 전개다. 그 전개의 시작이 제비고 그 복을 뒷받침하고자 뱀이 등장한다. 뱀은 천주교나 기독교나 공히 사탄으로 나쁨을 나타내다. 결국 뱀의 등장으로 인해 멀쩡하던 제비의 다리가 댕강 부러진다. 흥부와 그 부인은 부러진 제비 다리를 정성껏 치료하고 요행히도 완치가 된다. 그해 가을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가 봄이 되자 박씨 하나를 물어 돌아오고 흥부는 이를 받아 정성껏 심는다. 복을 짓는 데 설렁설렁하거나 건성건성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정성껏은 필수다. 이윽고 가을이 돌아오고 팔월 한가위를 맞았지만 흥부네 집은 여전히 가난하여 배를 굶는 날이 밥 먹듯 한다. 이에 박속을 후벼 파서 국이라도 끓이자 싶어 초가지붕이 내려앉을 듯 커다랗게 몸집을 불린 박을 따서는 톱으로 켠다. 보름날 보름달처럼 부푼 박, 로또 복권이 몇 회를 거듭하여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상태다. 켜는 박마다 고루거각의 집이 나오고 금은보화가 언덕을 이루고 꿈에도 그리던 쌀이 무한정으로 쏟아지자 흥부네는 일순간 졸부로 변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놀부가 아픈 배를 주려안고 정탐을 겸한 탐방을 왔다. 올 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는 빈손으로 가기가 왠지 섭섭하여 선선히 내어준 화초장을 등에다 걸머지고선 힘에 부쳐서 비틀거린다. 아우인 흥부가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는 것을 손사래를 치는 등 억지로 짊어지고 뒤뚱거리다가 종내는 내를 건넌다. 얼음이 번지르르한 내에서 꼬꾸라지고 미끄러지지만 재물 앞에 결코 포기란 없다. 걸음을 지체하다가 행여 흥부의 마음이 변해 물리러 올까 싶어서 힘들어도 힘들단 내색 한 번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놀부는 다음해 제비를 만난다. 부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제비를 잡아서는 다리를 분지른다. 부를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리 듯 스스로 뱀이 된 셈이다. 악을 짓고자 사탄을 자처한 것이다.

이후 놀부는 나이팅게일을 흉내하여 천사의 손길을 뻗친다. 화인지 복인지 분간도 없이 극진한 치료다. 어쨌든 치료가 끝난 제비가 이듬해에 박씨를 물어오고 놀부는 환호작약 박씨를 심었다. 발 없이 가는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유수 같은 흐름 속에 어김없이 팔월 한가위는 돌아오고 학수고대 이날만을 기다리던 놀부는 지붕에서 애지중지하던 박을 따 내렸다. 보기에도 큼지막한 박, 집안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중인환시 지켜보는 가운데 톱질이 계속되고 마침내 ‘딱’하는 소리와 함께 박이 갈라진다. 귀신이 나오고 낮도깨비가 나오고 오물이 나오고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부자가 망하려면 3대를 간다지만 놀부는 그간의 악행 때문인지 3대는 고사하고 하룻밤을 목 넘겨 폭삭 망하고는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만다. 제비가 등장하는 흥부놀부전의 끝은 권선징악을 주제로 마음씨 착한 흥부가 그간의 고생과 구박을 물로 씻은 듯 지우고는 형님인 놀부를 보듬어 행복하게 산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서툰 날갯짓으로 엄범덤벙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진 유조. 이원선 기자
서툰 날갯짓으로 엄범덤벙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진 유조. 이원선 기자

초가지붕에는 참새가 전세든 월세든 세를 들어 살고 그 아래로 제비가 집을 지어 산다. 같은 집에 기대어 살지만 둘의 운명은 천양지차다. 제비가 알뜰살뜰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는다면 참새의 운명은 사람에게 잡히는 순간 죽음이다. 개가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려 사랑을 받는걸 보고 우마가 흉내했다가 죽거나 팔려가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어떻게 보면 제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친구이기도 하다.

제비집에서는 어린 제비가 먹이를 보채서 온종일 ‘지지배배’ 울지만 시끄럽다거나 성가시다기보다는 오히려 정겹고 아름답단다. 슬하에 있는 수대로 거닐던 자식들이 떠난 빈자리에 제비가 그나마 위안인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새색시 적 자식을 돌보는 심정이다.

제법 자란 유조가 성급한 날갯짓으로 엄벙덤벙하다가 떨어지면 자식이 다친 듯 애지중지다. 영감을 애타게 부르고 고무 함지박을 엎고 의자를 받치는 등 기어코 제 집에 넣어주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할머니는 이야기거리를 하나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랑의 끝은 지짐을 부치고 국수를 삼고 상추를 뜯어 쌈을 반찬으로 때 아닌 잔치를 열어서 정을 내는 것이다. 그 공을 제비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찾아드는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어린제비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미제비. 이원선 기자
바닥으로 떨어진 어린제비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미 제비. 이원선 기자

함부로 해코지나 쫓아버릴 수 없는 새가 제비다.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강한 새 제비, 때문에 기복사상까지 겸비하고 있다. 제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집안에 화를 불러들이고 나아가 그 화가 자식에게까지 미친다고 여기는 까닭에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제비가 집을 짓고 사는 초가에 가면 파리나 모기 등등 벌레들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아마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까닭에 사람들은 선호하고 보호하며 그 고마운 마음을 실어 여러 가지의 전설을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연미복 차림의 제비 무리가 공중에서 날다가 날렵한 몸짓으로 아래로 내리꽂더니 물을 찬다. 지푸라기를 물고 진흙을 물고 공중으로 흔적을 지웠다가 다시 나타난다. 짝짓기가 끝나면 곧장 포란기간이다. 앞날의 축복인 듯 지지배배, 지지배배 연신 조잘거리는 노랫소리가 청아한 물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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