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향연으로 초대한 창원 무학산 둘레길
녹색의 향연으로 초대한 창원 무학산 둘레길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6.0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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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의 효심을 기억하는 뜻에서 맹종죽이라 부른 것이다.
레드카펫은 아닐지라도 아닌 게 아니라 흡사 꽃길을 걷는 기분이다.
“식당에서 안 먹고 왜 여기로 왔습니까?”오히려 반문이다.
만날고개에서 내려다보는 마산시가지와 바다풍경. 이원선 기자
만날고개에서 내려다보는 창원 시가지와 바다풍경. 이원선 기자

초여름이 주는 녹색과의 대화를 위해 무학산(해발 761.4m·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둘레길을 찾았다. 무학산의 옛 이름은 풍장산이다.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최고봉이며 마산(현 창원시)의 진산이기도 하다. 마산지역을 서쪽부터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듯 호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급하며 크고 작은 능선이 여러 갈래의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동쪽으로 뻗어난 서원계곡의 수목이 수려하여 볼 만하다.

그동안 무학산을 찾을 때면 늘 정상을 고집했지만 이번에는 둘레길 1코스를 택했다. 밤밭고개를 출발점으로 만날고개, 완월폭포를 거쳐 서원곡까지 약 8.1Km로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밤밭고개에서 둘레길 입구로 들어서자 푸른 손길을 불쑥불쑥 내밀어 오는 맹종죽림이 반긴다. 봄을 맞아 죽순을 캔 흔적이 산을 오르는 내내 흩어져 있다. 문득 중국요리에서 맛본 전가복이 생각난다. 새우 따위와 각종 해산물로 만든 요리 중에 죽순이 감질나게 섞여 있었다.

맹종죽은 대나무 중의 최고로서 그 이름은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옛날 중국의 오나라에 좌태어사 벼슬을 지낸 맹종(孟宗)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 병이 난 어머니가 백약이 무효로 죽기 전에 죽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죽순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효심이 지극한 맹종은 눈 속을 헤맸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슬픔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그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그가 흘린 눈물자국마다 죽순이 솟아올랐고 그 죽순으로 죽을 끓여드리자 악착같았던 병이 말끔히 나았다. 이후 사람들은 그때 솟아난 대나무에 맹종의 효심을 기억하는 뜻에서 맹종죽이라 했다.

뱀딸기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산괴불주머니, 가막살나무꽃, 때죽나무꽃, 싸리나무꽃. 이원선 깆자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뱀딸기, 산괴불주머니, 가막살나무꽃, 때죽나무꽃, 싸리나무꽃. 이원선 기자

죽림이 끝나고 10여 분을 더 오르자 작은 고갯마루다. 우거진 숲을 뚫고 마산 앞바다가 훤하고 산 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짭조름한 소금기를 품어선지 더욱 싱싱하게 옷자락을 스친다. 그때 배낭을 부스럭거리던 동료가 깎아 토막을 낸 오이를 건네며 먹어보라며 돌린다. 시원한 바람결 속에서 한입 베어 물자 오이가 품은 상큼함이 가히 일품이다. 이어 깎은 사과도 등장한다. 물을 마시고 심신을 풀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자리에서 체력까지 더불어 보충한 샘이다. 꿀잠 같은 휴식을 취한 일행이 행장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은 대체로 무난하다. 쭉쭉 뻗은 길보다가는 크고 작은 굴곡이 있고 뱀의 등짝처럼 구불거려 휘어지는 아기자기한 길이 걷기에도 앙증맞고 지루하지도 않다. 둘레길 전체가 대체로 이러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가 하면 언덕을 오르고, 올랐다 싶으면 내리막이다. 너덜겅이 있는가 하면 야자매트가 깔렸다.

첫 번째 휴식을 끝낸지 20여 분이 지나자 편백나무(세균 및 항균 작용이 뛰어나 웰빙용품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일본말로 '히노끼'로 불리는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란 천연향이 있어 잡냄새를 잡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숲이 나타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줄기가 세파에 찌들어 꼬깃꼬깃해진 마음을 시원스럽게 다림질하듯 경쾌하다. 숲을 파고드는 햇볕은 은은한 빛 내림까지 덤으로 선물한다. 게다가 숲 중간 중간으로 평상과 나무의자를 두어 쉬어가기에도 좋다. 하산주로 마산공동어시장에 회를 주문했다는 말에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 중식을 갖는다.

이른 점심을 끝낸 산길에서 발걸음을 늦춘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이듯 걸음을 늦추자 자연이 보인다. 녹음 짙은 길에 청풍이 일고 산이 주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한 보따리, 풀어진 보따리에선 푸름이 바다를 이루어 눈은 싱그럽고 꽃향기가 짙어 코는 간질간질하다. 딱새가 사랑을 노래하고 이름 모를 새가 피아노건반을 걷듯 지저귄다. 귀를 기울이자 새소리에 묻혔던 자연의 하모니가 한꺼번에 몰려 귓전에서 자글자글하다.

길 옆으로 작은 숲을 이룬 곳에서는 뱀딸기(뱀이 침을 바른 딸기, 먹으면 뱀이 따라온다는 속설이 있다)가 그간 틈틈이 삼킨 태양을 알알이 토해내듯 빨갛게 영글어 주렁주렁하다. 유년시절 같았으면 욕심이 동해서 보이는 족족 손을 뻗어 입이 미어터졌겠지만 “뱀딸구다.” 스르르 지난다. 사실 그렇게 맛있는 딸기는 아니다. 그 외 가막살나무 꽃이 층층이 흐드러지고 노란 산괴불주머니와 싸리꽃이 바람이 잔뜩 든 개구리 배처럼 초여름을 품어 길섶에서 다소곳하다. 그뿐만 아니라 옛날 딸아이가 태어나면 시집갈 혼수밑천을 위해 심었다는 오동나무꽃은 통째로 툭툭 떨어져 걸음걸이를 조심하라 말하고 때죽나무꽃 소박한 산길에 꽃박람회라도 연 듯 길을 뒤덮어 가득하다. 레드카펫은 아닐지라도 아닌 게 아니라 흡사 꽃길을 걷는 기분이다.

편백나무 숲에서 만나는 한줄기 빛. 이원선 기자
편백나무 숲에서 만나는 한줄기 빛. 이원선 기자

얼마나 걸었을까? 집 몇 채가 작은 개울을 끼고 오순도순 보이고 텃밭이 오종종하다. 정겹기가 한량없지만 멧돼지와 고라니 등등 산짐승들의 등살이 어지간한지 텃밭마다 철책으로 둘러쳐졌다. 철망 사이로 보이는 이랑에는 토란을 비롯한 각종 채소들이 파릇파릇 제법 새색시 티를 내고 쇠울타리 밑으론 더덕과 마가 웃자라 머리 위에서 건들건들한다. 자연에 취해 멋모르고 곧장 밑으로 걸으면 마산 시내다. 목적지인 서원곡으로 가려면 다시 왼쪽으로 난 소로 길을 택해야 한다. 얼마 안 가서 체육시설이 있는 널찍한 공터를 만났다. 발을 올려 허리운동을 하는 체육시설은 아직 온기가 남았는지 바람이 자는데도 저 혼자 흔들거린다. 앞서간 산꾼들이 남긴 여운이 정겨워 괜히 서툰 몸짓으로 어기적어기적 흔든다.

이런 곳에서는 휘모리장단을 부추기는 추임새처럼 우스갯소리가 등장하고 세상을 사는 이야기가 계곡을 넘쳐나는 물 같아서 도끼자루가 썩어나도 모를 지경이다. 마음에 여유롭다보니 허접스런 말 한마디에도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가 되듯 박장대소 푸~하하 까르르 함박꽃처럼 입이 벌어진다.

조금 늦으면 어떤가? 산행 시간이 3시간이라지만 딱히 지킬 이유는 없다. 4시간이면 어떻고 그 이상이라면 또 어떤가? 벌금 내라는 사람도 없고 늦다고 채찍을 들어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석 달간이나 무산된 모임이 아니던가. 그동안 코로나19란 지옥문의 나찰녀 같은 이야기도 밀렸고, 4.15총선이 주는 여담이 마음 속에서 풍선이 터질 듯 부풀었다. 거기에 이제 막 불거지는 위안부 할머니의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나름대로 구성을 마쳤는지 어설프게 선을 보인다. 실타래가 풀어지자 태산이 무너지듯 한정이 없다.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산골 주막촌에서 시골의 정겨움을 마주하다. 이원선 기자
산골 주막촌에서 시골의 정겨움을 마주하다. 이원선 기자

구불텅구불텅 산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어느 순간 오석골쉼터 앞에 이르자 이른 점심 탓인지 은연 중 허기를 느낀다. 한 걸음 뒤처진 도반이 “야~ 우리 여기서 파전에 동동주 한 잔 하자!”며 부추긴다. 그런데 같이 모였다가 이리저리 흩어지고 보니 달랑 3명이다. 먹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뭣하다. 메뉴판의 국수와 커피는 눈을 벗어나고 동동주, 부침, 두부김치만 오밤중의 네온사인인 듯 빛을 발한다. 사실 요즈음 산행 중 술은 금기사항이다. 그럴수록 더 아쉽다. 아쉬움을 못 이겨 실없이 어슬렁어슬렁 술집으로 발걸음이다. 사립문을 넘는 일행을 손님인양 여겨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께서 반기지만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려봤습니다”고 하자 모처럼 찾아든 손님인데 싶었는지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등을 돌린다. 아래쪽에서 나타난 할머니조차 등을 돌려 나가는 손님이 야속한지 망부석이 되어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바람이 으스스한데 아래쪽의 작은 사찰에서 불경을 외는 소리가 은은하다. 왜 쉬었다 가지 않고 그냥 가느냐고 나무라는 듯하다.

마지막 고갯길은 나무데크 계단이다. 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축복이라도 내리려는 듯 계단 양옆으로 때죽나무꽃이 즐비하다. 발걸음도 조심조심 훠이훠이 오르자 목적지인 서원곡이 동서로 길쭉하게 산을 기대어 누웠다. 이제 남은 것은 산행의 백미 하산주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무계단 가장자리로 축복인 듯 떨어진 때죽나무꽃이 즐비하다. 이원선 기자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무계단 가장자리로 축복인 듯 떨어진 때죽나무꽃이 즐비하다. 이원선 기자

그런데 ‘코로나19’가 그 하산주의 발목까지 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식당을 전세라도 낸 듯 들어앉아 입이 모자라게 떠들썩, 그간의 노고를 달래며 흥을 돋우었을 태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거기다 우리는 대구 사람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대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코로나19’의 집단 발병지였다. 애꿎은 마산 시민에게 괜한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산공동어시장에서 보기에도 푸짐하게 회를 떠서는 인근공터로 향한다. 한층 짙어진 녹음은 볼 때마다 새로워 눈에 시원하고 공원은 널찍했다. 사방을 둘러보는 공원 한쪽으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나와 여가를 즐기는 시민이 있었다.

“개가 아주 잘 생겼습니다”하자 “식당에서 안 먹고 왜 여기로 왔습니까?” 오히려 반문이다.

“예~ ‘코로나19’ 때문이지요!”하는 말에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은 그렇지요! 아무튼 맛있게 잡수고 가세요!”하며 남의 일 같지 않단다. 문득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표어가 생각나고 미련이 남아 둘러보는 버스가 떠난 자리로 녹색의 향연이 여전하다. 녹색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하루, 주인의 손길을 따라 개들은 신이 나 펄떡이고 그 사이를 비집어 초여름이 내놓는 햇살은 창공을 쓸어 참빗으로 빗은 듯 푸른 공원 위에서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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