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라진 할머니를 닮은 할미꽃!
꼬부라진 할머니를 닮은 할미꽃!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3.16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성이 강한 뿌리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불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늙고 병들어 힘겨운 삶을 산 할머니를 닮았다는 뜻에 할미꽃이라 하였다.
무덤가에 곱게 핀 할미꽃. 이원선 기자
무덤가에 곱게 핀 할미꽃. 이원선 기자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할미꽃이 핀다. 배수가 잘 되고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습성에 따라 봄볕이 팽팽한 무덤가에서 자주 보인다.

백두옹(白頭翁) 또는 노구초, 노고초로도 불리는 할미꽃의 뿌리는 지사, 학질, 신경통 등의 한약재로도 쓰인다. 그렇다고 독성이 강한 뿌리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꽃말은 ‘충성’, ‘슬픈 기억’이다.

유년시절 여름철이면 방천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할미꽃을 괭이나 삽을 이용해서 뿌리를 채취했다. 한약재로 쓰기 위함이 아니라 통시(현재의 화장실)에 넣기 위함이다. 그동안 화장실 문화는 무한대로 발전을 거듭하여 안방의 옆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60년대만 하더라도 화장실은 멀리 두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것은 인분이 썩으면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봄볕 속에 아름다운 할미꽃. 이원선 기자
봄볕 속에 아름다운 할미꽃. 이원선 기자

그뿐만 아니라 그 시설이란 것도 엉성하여 땅에다 구덩이를 파고는 통나무 2개를 걸치고는 수수대나 싸리나무 등을 이용한 굽바자를 두르는 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노지에 대충 만든 화장실은 여름철이 돌아오면 파리와 구더기 천국이다. DDT나 살충제 등은 농약이라 돈이다. 따라서 돈을 절약하고 또 구더기와 파리를 잡는 방법에는 할미꽃뿌리가 답이었던 것이다.

할미꽃은 처음 싹이 틀 때부터 할머니의 허리처럼 꼬부라져 올라왔으며 하얀색의 뽀송뽀송한 솜털 또한 할머니의 흰머리를 닮은 데서 기인한 이름이다.

“어이구 내 허리야! 나는 언제 저 푸른 대나무처럼 허리를 빳빳하게 펴 볼거나!”고 한탄이 늘어질 때면 짓궂은 조카들은 “할매요! 죽어 칠성판에 누워 저승 갈 때, 그때는 펴고 싶지 않아도 절로 빳빳하게 펴질 겁니다”며 농이다. 그만큼 할머니는 서럽다. 허리는 구부러지고 머리는 허옇다. 이빨은 얼기설기, 몇 안 남아서 무를 숟가락으로 긁고 홍시로 끼니를 때운다.

그 와중에도 몸에 밴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이리저리 분주하지만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다. 오히려 정신 사납다고 핀잔이지만 손자손녀를 한번이라도 더 안아 볼 요량으로 사탕이나 과자부스러기라도 생기면 광이나 다락에 숨기기 바빠 입으로 가져갈 틈이 없다, 거기에 가뭄에 콩 나듯 친척이 찾고 아들이나 며느리에게서 용돈이라도 두어 푼 받을라치면 치맛단에 꽁꽁 숨겨 바람 길을 끊는다. 이는 비단 현재의 할머니들만의 인생이 아니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할 삶의 섭리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어지러운 삶을 일컬어 사바세계(娑婆世界:불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컫는 말)라 한다. 한자가 지닌 뜻을 있는 그대로를 풀이를 하면 ‘娑: 춤출 사, 婆: 할미 파’인 것이다.

할미꽃 형제. 이원선 기자
할미꽃 형제. 이원선 기자

할머니의 어려운 삶은 할미꽃 전설에서도 잘 표현하고 있다.

옛날 할머니 한 분이 손녀 셋을 키웠다. 전설의 전개상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첫째와 둘째는 얼굴이 반반한 반면 성질이 포악하고 날카로웠다. 반면 셋째는 인물은 내세울 것이 없는 반면 심성이 곱고 마음씨가 착했다. 이윽고 손녀 셋은 혼기차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시집 또한 인물에 따랐는지 첫째와 둘째는 부잣집으로 간 반면에 셋째는 가난한 나무꾼에게로 갔으며 집 또한 높은 산속 깊은 곳에 있었다. 원래도 허리가 꼬부라져 부실한 할머니는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지팡이를 짚고선 첫째 손녀를 찾았다. 처음에는 반갑게 맞았으나 할머니로부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되자 대문을 걸어 잠가버린다. 할 수 없이 둘째 손녀를 찾았지만 미리 연통을 받았는지 대문조차 열어 주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마음씨 곱고 착해 빠진 셋째손녀 밖에 없다싶어 높은 산속으로 길을 잡았다. 허기를 참아가며 어렵게 언덕을 올랐다. 저만치에 셋째손녀의 오두막집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희망에 부푼 할머니가 언덕에 머리를 기대어 잠시 쉰다는 것이 꿈결처럼 아늑하여 영영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할머니 아니세요!” 이후 고갯마루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발견한 셋째손녀가 정성껏 할머니의 무덤을 만들었고 이듬해 봄이 돌아오자 할머니를 닮은 듯 꼬부라진 꽃대 끝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이에 이름을 지으니 늙고 병들어 힘겨운 삶을 산 할머니를 닮았다는 뜻에 할미꽃이라 하였다.

뽀송뽀송한 흰 솜털에 휩 쌓인 할미꽃. 이원선 기자
뽀송뽀송한 흰 솜털에 휩 쌓인 할미꽃. 이원선 기자

현 시국은 사바세계가 지닌 뜻처럼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의 창궐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 한치 앞이 캄캄하다. 전에는 뭉쳐야 산다지만 이제는 뭉치면 죽는 단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 방송인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아들이 어떻게 자식이라 할 수 있습니까?”고 울먹였지만 현 시점에서 볼 때 그것은 약과다. 아예 장례식도 참석치 못한단다.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 언제 끝날지 현재로서는 기약은 없다. 그저 봄볕만 화창하다. 그 따사로움에 화답을 하듯 양지바른 무덤가로 할미꽃이 붉은 꽃잎을 펼쳐 피어나고 있다. 이는 생명의 신비이자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 같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독려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