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요일의 튤립꽃 여행
우요일의 튤립꽃 여행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4.17 2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에 관한 전설은 대개가 슬프다. 쑥부쟁이 전설도 그렇다.
-튤립은 유럽과 중앙아시아(특히 터키)가 원산지다.
-옷차림이 후줄근, 괜히 미안한 마음이 인다.
손을 이용한 튤립꽃 연출. 이원선 기자
손을 이용한 튤립꽃 연출. 이원선 기자

옛날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티 없이 밝고 맑게 자란 소녀는 세상 물정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소녀에게 세 명의 청년이 동시에 청혼을 하였다. 한 명은 그 나라 왕자였고, 두 번째 청년은 용감한 기사, 세 번째 청년은 돈이 많은 상인의 아들이었다.

왕자는 “만일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나의 왕관을 그대의 머리에 얹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기사는 “당신이 만일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인 보검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으며, 재벌 2세는 “당신이 만일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내 금고 속에 가득 들어있는 황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랑과 행복한 미래를 생각할 때 세 가지의 청혼들은 어느 것 하나 터부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귀에 솔깃함은 물론 탐을 낼만한 조건으로 세 청년은 소녀의 간택을 기다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들은 너무나 좋은 분들이군요” 모두 거절해 버린다. 그렇다고 곧장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끈질긴 청혼이 이어졌지만 소녀의 대답은 한결같아 ‘NO’다. 결국 셋은 “나중에 너는 평생 동안 결혼도 하지 못할 여자”라는 저주 섞인 욕을 퍼붓고 모두 떠나버렸다. 소녀는 청년들의 저주가 기가 막히고 황당하여 병이 들었고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

꽃에 관한 전설은 대개가 슬프다. 쑥부쟁이 전설도 그렇고 할미꽃 전설도, 동강할미꽃 전설도 대동소이 죽음으로 끝나 꽃으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다. 전설처럼 소녀도 죽었다.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꽃의 여신 ‘플로라’는 죽은 소녀를 언제나 생명력이 있는 튤립으로 태어나게 하였다.

빗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자태의 튤립꽃. 이원선 기자
빗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자태의 튤립 꽃. 이원선 기자

‘영원한 사랑의 고백’이란 꽃말을 지닌 튤립, 그래서인지 튤립의 꽃송이는 왕관모양이고, 잎은 칼처럼 뾰족하며 꽃의 빛깔은 황금처럼 노랗다.

혼수로서는 단연 최고였으며, 몇 세기 전만하더라도 황소 수백 마리를 팔아야 가질 수 있었던 꽃 튤립, 집 세 채와 맞바꿀 수 있는 꽃, 튤립이 이렇게 비싸게 된 이유는 17세기 있었던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사건 때문이다. 단색으로 저렴한 가격의 튤립에서 우리나라의 춘란처럼 변종이 생겨난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변종 튤립은 비쌌다. 이 사건으로 네덜란드의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 튤립만 심었다. 이로 인해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품귀현상은 곧장 가격의 폭등을 불러왔던 것이다.

튤립은 유럽과 중앙아시아(특히 터키)가 원산지다. 내한성 구근초로 가을에 심으며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이고 원줄기는 곧게 서며 갈라지지 않는다. 길이 20∼30cm로서 넓은 바소꼴이거나 타원 모양 바소꼴이고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며 안쪽으로 약간 말린다. 꽃은 4∼5월에 1개씩 위를 향하여 빨간색·노란색 등 여러 빛깔로 피고, 길이는 7cm 정도이며 넓은 종 모양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7월에 익는다. 관상용 귀화식물이다.

현재 튤립하면 네덜란드를 연상할 정도로 그 나라는 생산 및 수출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원래 튤립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던 꽃이 터키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네덜란드에는 1593년 한 식물학자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 이후 다양한 품종과 색깔로 점점 더 아름다운 꽃으로 변해가며 현재는 네덜란드 국가의 주요 수출 작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무지개우산을 쓴 관광객이 보이는 튤립 꽃밭. 이원선 기자
무지개우산을 쓴 관광객이 보이는 튤립 꽃밭. 이원선 기자

봄비가 추적이는 일요일 경주를 찾았다. 비가 오는 탓인지 ‘코로나19’ 탓인지 주차장에는 차가 없고 꽃밭도 사람들이 없어서 썰렁하다. 어느 지자체는 관광자원으로 애써 가꾼 유채꽃밭을 트랙터로 몽땅 갈아엎고, 어떤 지자체는 펜스를 둘러 관광객들의 진입을 아예 막아버렸다. 어떤 놀이공원은 튤립축제를 알리는 광고만으로도 뭇매를 맞았다. 뉴스를 대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첨성대가 떡하니 버티고 선 아래에 바둑판처럼 구역을 나누어 옹기종기한 꽃밭이 뙤기의 남새밭을 보는 듯 푸근하여 아름답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빗방울이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 들쑥날쑥 했는데 여우비가 지난 듯 잠시 빤하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텅텅 비었던 꽃밭 언저리로 카메라를 든 관광객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생기가 넘친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짐승들이 있어야 할 곳에서는 짐승들이 있어야 볼 만도 하고 풍경에 활기가 넘친다. 그 가운데 속한 나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는 볼 만한 풍경으로 다가설지 모른다. 옷차림이 후줄근 괜히 미안한 마음이 인다.

새삼 바라보는 첨성대는 지난 이야기를 다 품어 안은 듯 제자리에서 의연하다. “첨성대가 좀 기운 것 같지요?” 물어 왔을 때 “본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좀이라도 슬었겠지요! 1600여 년의 세월 속에 뭐든 온전하겠습니까?”고 되묻는다. 아니면 첨성대 또한 작금의 사태가 기가 막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 몸을 기웃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1600여 년이 갖는 의미처럼 온갖 풍상을 다 겪었는데 “별것도 아니구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튤립의 아웃포커스 촬영. 이원선 기자
아웃포커스로 촬영한 튤립. 이원선 기자

꽃밭 언저리를 배회하며 꽃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지금은 흔하지만 한때는 다락같은 가격으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고, 심고 싶어도 심을 수가 없었던 꽃이다. 비를 품은 꽃봉오리가 세안을 끝낸 어느 산골소녀처럼 청초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쩌면 신부화장을 끝내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초조해하던 부인의 화사한 드레스를 보는 느낌이다. 햇빛이 고와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구름이 많아서 아름다운 날이기도 하다.

한식경이나 지났을까? 숨을 죽이던 날씨가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심술을 부린다. 접었던 우산을 펼치고는 내남없이 종종걸음이다. 여전히 튤립은 빨갛고 노랗고 형형색색으로 아름답다. “언제 또 올라는교?” 물어오지만 장대비 속에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그리움을 한아름 담아 내던지는 어머니의 “내달에는 오나?” 같아 기약이 없다. 단지 양념통과 먹을 것들로 가득하던 보따리를 챙겨들던 손에 달랑거리는 카메라가 2020년의 슬픈 봄 이야기를 하나 둘 또박또박 기억하는 중이다.


관련기사